brunch

시적인 일상

by 이재이



유치한 걸 다 빼버렸더니 낭만이 사라졌다.


분량 조절에 실패한 연설처럼 난사되는 말들. 그저 산발적으로 방대하게 흩어지는 고백의 향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원래 편지란 그런 법이지. 나는 종이를 구겨 결코 부치지 않는다.


가슴에 동봉된 편지, 하지 못한 말들. 하지 못했지만 참지 못하고 해버린 말들. 나에게 해버린 말들.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내가 들은 말들. 너를 위한 말이지만 결국 나를 위한 말이 되어버린 낭자한 표현들.


있어보이려고 하면 껍데기만 남게 되고, 아무것도 남기기 싫어 마음을 꾹꾹 삼킬수록 알맹이가 되는 것을. 알맹이가 되다 못해 덩어리 져 삼키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이토록 목이 메는 것을.






시계를 거꾸로 읽는다. 3시 35분. 시침과 분침을 반대로, 7시 15분으로. 잠깐만, 이거 멈춘거야?


째깍째깍 시계는 참 부지런도 하지. 초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한 칸씩, 딱 한 칸씩만 움직이잖아. 지겨워라. 어찌 쉬지도 않고 그럴까. 나는 시계를 시샘하고 미워하지만, 실은 부러웠던 것이다. 약이 닳아 시계가 멈춰버렸을 때 이토록 마음이 저릿한 걸 보면. 집에 수많은 손목 시계 중 전자 시계가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문득 집에 큰 그림을 걸고 싶다고 생각했다. 쇼파 뒤 벽면에 아주 큰 그림을.


그 정도로 큰 캔버스는 찾기 쉽지 않겠는데. 잠깐만, 캔버스를 여러개 이어 붙이면 큰 캔버스가 되잖아. 그럼 그림을 조각조각 그려야 하나? 멀리서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게 이렇게 붙여놓은 채로 스케치를 해서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채색을 하고 다시 붙여서 벽에 걸면 되려나. 자자, 그럼 몇호 캔버스를 주문하는 게 좋을까. 보자 보자, 줄자가 어딨더라. 나는 서랍을 연다.


그러다 그냥 작은 그림을 하나 그리고서 벽에는 걸지 않는다. 벽면을 많이 차지 하는 무언가를 걸면 필연적으로 답답함을 느낀다는 걸 알면서도 이따금 아주 큰 그림을 걸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가득차면 비워야지. 쓰레기통이든 감정이든 머릿속이든 그게 뭐든. 하지만 요즈음의 난 미처 꽉 차기 전에, 심지어 반도 채워지기 전에 비워버리는 걸 좋아한다.






낭만적 일상과 이성적 판단은 때때로 충돌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판단을 유보한다. 시를 읽듯이 설명문을 읽어선 안 되고, 설명문을 읽듯이 시를 읽어도 안 되니까. 그 어느쪽도 의미 없어지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나는 한 쪽이라도 살리기 위해 선택의 시간을 갖는다. 다만 신중하게.


시적인 일상을 포기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채택할 것인지, 조금은 비합리적일지라도 시적인 일상을 버리지 않을 것인지 매순간 고민한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매번 비슷한 선택을 하고, 늘 시적인 일상을 누리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두고 만다. 진짜 아름다운 것은 늘 애매모호하다고, 완벽하게 확실하고 분명한 건 결코 미학적이진 못하다고 엉터리 미학론을 펼치다 유치한 낭만을 추종한다. 여전히 그런 수순을 반복하고 있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