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말도 안 돼!

죽기 위해 열심히 살아버린 인생

by 공원의 서쪽




우리들 인생에는 각자의 아이러니들이 존재한다.



텅텅 빈 가게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들어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북적인다던지, 다 같이 줄 서서 기다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앞에서만 항상 솔드아웃된다던지, 무언가 포기하기 직전에 절벽 끝에 서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한다던지, 오랜만에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집도 치우고 빨래도 하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비가 와서 빨래를 망쳐버리게 된다던지.



사실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도 아닐 수도 있고,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보통의 날 중에 하나일 수 있는데 괜히 이럴 때면 격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또 하나의 운수 좋은 날이 탄생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쩌면 모든 아이러니 속에서 삶의 힌트를 얻는지도 모른다. 예상과 어긋나는 일들, 우리의 계획을 비웃듯 흘러가는 우연들이 실은 우리를 끌고 가는 리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는 그 자체로 모순의 언어고, 모순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고전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질서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삶은 늘 그 틈에서 비집고 들어온 우연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그 우연들이야말로 진짜 질서일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없을 때의 충만함, 계획이 어긋났을 때의 새로운 발견, 포기하고자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때 찾아오는 기회들. 이 모든 건 우리가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꾸만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흘러가는 데로 무기력해질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들에서도 뭔가 말 없는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쯤은 읽어낼 줄 알게 되는 것. 삶은 거대한 아이러니의 연속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매번 의미를 새로 발견해낸다. 아무 의미도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굳이 의미를 만든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빨래가 젖은 날엔 그냥 한번 웃으면 되는 일이고, 1시간을 기다렸지만 바로 내 앞에서 케이크가 동났을 땐 다이어트하라는 우주의 배려쯤으로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것이 된다. 결국, 아이러니는 우리를 조롱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작은 것에 집착하며 진지해질 때쯤 한 발짝 물러서 웃으며 균형을 잡아주는 어떤 지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고 이상한 아이러니들 속에서 조용히 마음의 주파수를 조정해 본다.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덜 기대하며, 그럼에도 한 줄기 기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2005년,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병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게 되기 시작했다. 한 번의 작은 수술, 두 번의 큰 수술. 한 달마다 일주일씩 병원에서의 입원과 치료,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인 검진을 수년간 받으러 다니며 매 순간 3개월짜리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작 만으로 14살짜리에게 이런 고민은 할 시간도 생각도 없었다. 미래를 위한 계획도 없었다. 엄마아빠는 TV에 나오는 공익광고 카피처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을 했다.



20살, 성인이 되고 나자 갑자기 나에게도 어른으로써의 자유가 주어진 것 같았다. 수술이 잘 끝났으니, 치료를 잘 마쳐가고 있으니, 이제 잘 살아보기 위한 방법만을 찾을 것 같았지만 엉뚱하게도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튀어버렸다. 내가 내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인생인데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살던지 그 자유는 나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숨을 쉬는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그러므로 인간도 당연히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우리는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면 된다.



그래서 정말 오늘만을 잘 살았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냈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기에 오늘 하루 잘 산 것이 뿌듯했다. 나는 '웰 다잉'을 향해 잘 가고 있노라고, 이미 죽음에 대해 마음이 잘 준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두렵다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너희가 '생'과 '사'를 아냐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살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살아낸 건 나였던 것이다.



죽음이 어떤 건지 남겨진다는 게 어떤 건지 떠난다는 건 어떤 걸지 전혀 예상조차 안되고 알 수 없는 그 미래가 두렵다 못해 무서워서 쿨하게 직면한 척 피해버렸던 부조화스러운 나. 3년 후 5년 후 10년 후 미래를 계획하며 준비하고 싶은데 반복되는 건강검진에서 "모양이 좋지 않은데요...? 정밀하게 다시 검사해 봐야겠어요"라는 말을 듣는 게 감당이 안 돼서 어차피 미래 따위는 준비도 안 했어, 언제 입원해도 아쉬울 게 없지 라는 말을 해버리는 모순적인 나.



내 인생은 아이러니로 점철된 삶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그 아이러니들 덕분에 나는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고, 더 깊이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언제든 예상치 못한 진단 하나에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미뤄둘 수는 없다.



자유 속에 내 삶이 던져졌다 느꼈을 때,

그 자유를 정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 때.



자유는 때로 잔인할 만큼 무겁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나의 삶을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죽음을 상상하는 건 괴롭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삶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제 내 인생의 운수 좋은 날을 그만 지정하고 매일을 열심과 최선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내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우산을 피고 우비를 꺼내 입고 장화를 신으며 나에게만 내리는 것 같았던 폭우에 맞서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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