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매일 새로 쓰이는 나의 역사
당근은 당근이다.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에
해당하는 주홍빛의 채소.
당근은 토끼도 좋아하고 말도 좋아하니까,
어렸을 때 토끼랑 말을 그릴 때면
항상 당근을 같이 그려놓곤 했다.
내가 정말 어렸을 때 당근은 당근일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당연'이라는 말이 '당근'으로 바뀌어서 쓰이기도 했다.
"너 숙제했어?"
"당근이지"
왜 당연하다는 걸 당근이라고 해?
아무도 이 질문에 누가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보편화되었는지 정확한 답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당근을 당연하다는 뜻으로 말한다는 건 모두가 알 것이다. 이런 신조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게 되면서 이제 당근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한 표현을 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더니 이제는 지하철역 앞에서 눈빛을 주고받으며 조심스럽게 "당근...?" 하고 운을 떼면 서로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판매하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구매하게 되는 말이 되어버렸다.
당근은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쓰일 줄 알고 있었을까?
당근이라는 말이 호쾌하게 “okay”를 외치는 말이 되었을 줄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물건 하나로 친밀해지기도, 기분이 깊이 상하기도 하는 말이 되었을 줄은 당근도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또 당근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는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당근은 당근으로 태어났지만 당근의 역사는 아직도 쓰이고 있는 중 인 것이다.
나는 나로 30년을 살았다.
엄마 아빠의 딸, 언니의 동생, 누군가의 친구, 학교에서의 학생, 회사의 직원, 한 남자의 아내의 모습으로 언제나 나를 대표할 수 있는 타이틀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나였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초등학생일 때 나는 책상 밑을 좋아했다.
책상 밑 선반을 아지트 삼아 주워온 돌멩이들에 그림을 그리며 만지작거리고, BSB테이프를 늘어질 때까지 들으며 말도 안 되는 발음으로 따라 부르고, 혼자 음악책을 펴놓고 동요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보다는 혼자 조용하게 그림을 그리고 다이어리에 새로 사 온 스티커들을 붙이고 꾸미며 시간을 보내기를 즐겼다.
분명 20대 때는 북적이며 노는 게 좋았다.
하루가 24시간인 게 아까워서 누구 하나 1교시 강의를 들어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9시 수업을 듣고 하루 종일 작업실 구석에 앉아 작업을 하고, 친구들과 밤을 넘어 다음날이 될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며 놀았다. 내가 미술을 전공한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고, 매일 흙을 만지면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업 좀 한다는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 지내며 작가란 무엇일까, 좋은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 내 작품이 팔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하는 등 이미 내가 대가가 되어 이런 말을 하는 듯한 멋에 취해 몇 시간이고 이런 얘기들을 나누며 우리의 청춘을 이렇게 소비해 보는 것도 참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의 20대 때,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서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예로 들어보자면, 대학생 때 무조건 참여해야만 하는 MT에 안 가겠다고 말해놓고, 오전 10시까지 모여야 하는 MT당일 9시 30분에 일어나 후다닥 지갑과 칫솔 하나만 챙겨 택시를 타고 학교로 출발했었다. 동기들은 "어휴 쟤 저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하며 후다닥 나온 내 모습에 깔깔거렸고 왠지 나는 그냥 그런 내가 좋았다. 또 다른 그냥 어느 날은 잠이 너무 안 와서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다가 씻지도 않고 지하철 첫차가 다닐 때 나와서 혼자 무작정 춘천으로 여행을 갔었다. 다들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준비하고 스펙을 쌓고 유학을 준비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에 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왜 준비해야 해?라고 말했다. 그냥 작업하며 글이나 쓰고 오늘을 살겠다고 시시껄렁한 말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랬던 나를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에 해당하는 주홍빛의 채소'처럼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다. "언제부터 당연하지가 당근이지로 쓰인 거야?"라고 물어보면 '글쎄 대략 이때쯤일걸?' 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에 대해 "쟤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어보면 "그러게 대략 이런 사람이야~"처럼 뭉뚱그려져 있고 대략적이다.
과거를 하나하나 들춰보자면 너무 찌질하고 부끄러워서 어디 내놓을 수도 없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만 그런 내가 싫지도 않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정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에 직면해서 나는 앞으로 살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만이 중요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고 세상에서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해 가면서 나는 조금씩 천천히 변해갔다. 이제는 대학생 때처럼 칫솔 하나만 달랑 들고 1박 2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깡다구도 없고, 아무 데서 아무거나 입고 자고 싶지도 않다. 잠옷과 외출복을 깨끗한 것으로 챙기고 내가 사용하는 화장품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겨서 가고 싶다. 이제는 잠이 안 온다고 그냥 밤을 지새우지 않고 어떻게든 눈을 감고 자려고 노력해 보며 잠이 든다.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제 나는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고, 공부를 하고, 계획을 세운다. 더 이상 24시간이 아까워서 하루 종일 밖으로 나돌지 않고 며칠 내내 집에서 하루 종일 조용하게 있는 날도 있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날도 늘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더 건강한 나의 미래를 위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초등학생때로 돌아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게 더 늘어난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 약 10년을 혈기왕성하게 살았었는데, 30대가 넘어가자 점차 변해가는 내 모습에 가끔은 나도 적응이 안 된다. 원래의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었을까? 이게 정말 내가 맞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 하는 기로에서 종종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나도 또 좋다.
그냥 이런 나.
뭉뚱그려지고 설명하기 어려운 나.
* 모든 그림과 글은 작가가 직접 그리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