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기술
눈-치
명사
1.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
2.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태도.
유독 한국인에게 필수 덕목이 되어버린 눈치.
“눈치가 없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 한마디에는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한 미숙함, 분위기를 해치는 무신경함, 때로는 공동체로부터의 암묵적 배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칭찬처럼 들릴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의해 조율되고 있는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눈치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이토록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것일까?
눈치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특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우며, 개인의 자유보다 관계의 조화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눈치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타인과 충돌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눈치가 과도해지면 자기표현의 자유가 억압된다는 점이다.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느라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엄마아빠의 기분을 살피는 눈치,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 사이에서의 눈치, 직장 내에서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의 눈치.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상황과 분위기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눈치 빠르게 행동해서 사회적으로 쿨해 보이고 관계적으로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우리는 모두 몸 안에 눈치라는 기초체력을 쌓고 매일매일 단련하며 살아가고 있다.
눈치 안 보는 세상에서 살고 싶기도 한데, 사실 눈치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눈치는 공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고, 그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은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치는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다. 누군가 내 상황을 눈치채고 나에게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해주는 것, 우리는 그런 배려를 기대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삶은 무례하거나 둔감할 수 있지만, 눈치만 보며 사는 삶은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든다. 우리는 눈치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존재의 중심을 지켜야 한다. 눈치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나 자신을 마주하는 힘이기도 하다.
눈치란, 결국 ‘나를 어떻게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존재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 각자의 답변인 셈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겨울이 될 때 즈음이면 엄마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철새 탐험을 다녔었다.
11월 경, 가을의 끝자락이 겨울의 시작을 밀어내던 그 계절.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어떤 새들이 철을 따라 이동하는지, 하늘에서 어떤 모양으로 날아가는지 커다란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탐조 프로그램이었다.
철새탐험을 하는 날은 늘 바람은 칼 같고 을씨년스럽게 추웠다. 두터운 패딩에 목도리, 귀를 덮는 털모자, 손가락 털장갑으로도 모자라 그 위에 벙어리장갑까지 꽁꽁 싸맸는데도 몸속이 시린 추위. '이런 추운 날을 새들은 어떻게 견뎌낼까'라는 생각을 할 때 즈음이면 새들은 "그런 추위는 이렇게 이겨내는 거야"라고 대답이라도 하듯 날개를 힘차게 퍼덕거리며 날아오르곤 했다.
사실 어떤 새를 보았는지,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는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지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처음으로 철새 떼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장면을 보았을 때, 가슴 깊숙이 밀려들던 그 감동은 여전히 짙게 남아있다. 바람에 갈대가 서로 부대끼는 소리만 나는 적막한 강가에 어느 누구 하나 "이제 가야 해!"라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떤 존재들은 말없이도 때를 알고, 움직인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가야 할 때를 아는 것. 평화롭게 하늘을 날다가도 어느 순간, 낯선 기척도 없이 방향을 틀며 날아가는 것.
나는 그래서 철새가 좋았다.
말없이 시기를 알아채는 그 능력이, 설명도 외부의 지시도 없이 변화의 때를 알아차리는 그 본능이, 마치 자연이 부여한 어떤 특별한 눈치처럼 느껴졌다.
눈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눈치는 단순한 기질이 아니라 하나의 생존 방식이 되어버렸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나 혼자일 수 없고, 함께하는 순간 ‘우리’가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분위기를 살피고, 말끝의 숨은 의미를 읽고, 내 기분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고려하며 살아간다. 눈치가 빠르면 사회성이 좋다고 칭찬받고, 눈치 없이 구는 사람은 관계에서 튕겨나간다. 하지만, 지나치게 눈치를 보면 ‘자기 자신’은 서서히 눌리고 사라진다. 눈치는 마치 양날의 검 같다.
하지만 철새를 떠올릴 때면 눈치를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눈치는 어쩌면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아닐까.
철새처럼, 누가 말하지 않아도 때가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과감히 방향을 트는 용기. 타인의 명령과 의견이 아닌 내 안의 감각에 따라 스스로 알아차리고 움직이는 것. 어쩌면 눈치는 결코 나보다 남을 위해 신경 써야 했던 비굴하거나 주눅 든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타인과 나,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조율하며 균형 있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방향을 조정하며 살아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서는 일. 그것은 철새가 바람을 타며 형체를 바꾸듯이 유연하면서도 민감한 감각과 같다. ‘눈치’는 우리에게 내면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일수도.
어린 시절 내가 본 철새는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었고, ‘언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릴 줄 아는 감각이었다. 이제는 철새처럼, 말없이도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눈치가 아니라, 가야 할 때를 읽고 멈춰야 할 때를 아는 눈치. 변화 앞에 흔들리기보다, 흐름을 읽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눈치.
그렇게 나는, 철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