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밤을 품은 커피
커피의 전설.
가장 오래된 커피의 유래, 아니 전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염소 치기, 칼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칼디의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해 날뛰는 모습을 보고 그 열매를 수녀원에 가져갔던 것이 시작이다.
어쩌면 동물들은 이미 커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 과일을 먹으면 좀 더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다고, 이 과일을 먹고 나면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동물들 사이에선 이미 소문이 자자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만 몰랐을 수도 있었던 커피와 인간과의 인연의 시작은 이때 즈음이 된 것이다.
커피열매는 곧 인간의 정신을 깨우는 열쇠가 되었고, 예멘의 수도사들은 그 열매를 달여 새벽까지의 기도 속에서 깨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커피는 사막을 건너 이스탄불의 골목길을 적셨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진한 커피를 나누며 세상의 이치를 논했다. 그 검은 액체 안에는 정치가 있었고, 시가 있었으며, 신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유럽으로 옮겨간 커피는 한 잔의 커피값으로 세상을 배우고, 세계를 설계하며 커피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 공간이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개인의 취향과 삶의 방식까지 나타내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커피는 처음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깨어있음'의 상징이다.
커피는 본래 나에겐 아침의 음료였다.
하루를 깨우고 정신을 조이는 하나의 표식.
아침 일찍 일어나 정신 차리고 무언가를 해야 할 때면 빈속에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점심 먹고 나른해짐이 몰려오면 그걸 깨우기 위해 또 한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집중해서 기억하고 들어야 할 때 또 한잔. 그렇게 나를 깨우기 위한 존재로 매일매일 함께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가 밤이 되면 커피가 더 마시고 싶어진다.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리듬이고 자연의 질서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느 날부터였고, 그렇게 매일이 되었다. 이건 단순한 습관의 역행이 아니라, 불면으로 가기 위해 이어지는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반복되는 불면 속에서 침대는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잠들지 못하는 전쟁터로 바뀌었고, 스멀스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자연의 질서에 어긋난 자로 스스로를 재학습시켜버렸다.
지긋지긋한 불면의 밤.
아니 사실 하루 종일 기다려왔던 불면의 시간.
자정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오늘이 될 것을 기다리며 커피 한 잔을 통해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한다. 이제 이것은 내게 남은 하루를 연장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제는 잠들 수 없음을 인정하는 행위가 된다.
4평 남짓의 조용한 자취방
길거리 찻소리도 잦아드는 늦은 밤. 밤의 침묵 속에서 내 머릿속은 오히려 시끄럽고, 생각은 끊임없이 흘러넘치고, 감정은 끝없이 진동한다.
밤의 커피는 목적이 없다.
각성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음 자체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신다.
그것은 오히려 내 불면에 대한 작은 항의이며, 동시에 체념이다.
나의 불면은 병일까, 깊어져가는 나 자신일까.
커피의 쓴맛은 그 자체로 밤의 맛과 닮았다.
달콤하고 화려한 낮을 지나 노을 지는 냄새가 날 때,
번쩍이는 간판들 속에 홀로 고요한 나를 볼 때,
모든 불이 꺼지고 천장에 희미한 전등빛만 남은 혼자 마주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진짜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모든 가식과 목적이 벗겨진 채, 오직 나와 나만이 남는다.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진실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도 커피를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