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도 원하는 머리에 쓰이고 싶어

나를 고르게 두는 일

by 공원의 서쪽




옷장 선반 어디쯤 오래도록 먼지 쌓인 모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로 사긴 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굵은 실로 짜여 방울이 달린 빨간 털모자. 그냥 꺼내어 쓱 한 번 눌러썼다가 거울을 보고 웃었다.



“ㅎ... 나랑은 안 어울리네.”
그리고는 다시 벗어던졌다.



방바닥 위에 집어던져 놓은 잠옷과 함께 널브러진 모자를 보자니 모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참나... 나도 내가 어울리는 머리에 쓰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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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우리가 선택한다고 믿는다.

옷도, 말도, 삶의 방식도.

선택은 주체의 권리이자 정체성의 표현이다. 하지만 반대로, 선택당하는 것도 일종의 선택일까?



우리의 삶은 마치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결정을 내려주는 일들이 삶에 종종 벌어진다. 어쩌면 너무 자주일 수도 있다. 앞으로의 진로, 연애, 심지어 하루 점심 메뉴까지도. 나는 주도적으로 선택했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선택당했나?



우리는 대부분 ‘선택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선택당하는 자는 때로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에는 선택 ‘당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어느 날은 친구가 시킨 메뉴에 따라 ‘같은 거 주세요’ 하며 고개만 끄덕인다. 또 어떤 날은 나의 선택이 아닌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포장해야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상황이 그러니까.”
“그래도 이게 현실이니까.”



그 모든 말속엔 ‘선택당함’에 대한 정당화가 숨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궁금해진다. 그렇게 선택당하는 것조차, 사실은 나의 선택일 수 있지 않을까?



모자는 늘 사람에게 선택당한다.
오늘의 머리 모양, 지금의 기분, 일정에 따른 스타일, 요즘의 날씨, 그리고 그날의 자존감까지. 사람은 모자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고른다. 때로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때로는 과시하기 위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모자도 나름의 모양과 색과 감정을 가진다. 방울 달린 나의 털모자는 밝고 명랑한 사람의 머리 위에 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나의 머리는 방울모자에겐 어쩌면 너무 무심하고 차가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웬만하면 물건에 감정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감정을 부여하는 순간, 그건 '도구'가 아닌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인형에게 이름을 붙이고, 찢어진 공책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한다.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왜 멈췄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모든 사물에 '기능'만을 요구하게 되었을까?



예전에 마틴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을 읽었었다.

철학자 마틴 부버는 인간관계를 ‘나-너’와 ‘나-그것’으로 구분했다. ‘나-그것’은 도구적 관계다. 내가 너를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 하지만 ‘나-너’는 서로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관계다. 그 관계 안에서는 목적보다 어울림이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모자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우리는 늘 내가 주도권을 쥔 ‘나-그것’의 관계였다. 하지만 만약, 그 모자가 내 머리 위에 쓰일 준비가 되어 있고, 또 나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면? 그건 더 이상 일방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건 어울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어울림을 잊는다. 능력, 성격, 유익함 등등. 모자를 고르듯 기능을 기준으로 사람을 고른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람은 늘 벗겨진 모자처럼 소외된다.



“넌 필요 없어.”
“넌 나랑 안 어울려.”


그 말은 때때로 타인을 향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울림은 단순히 잘 맞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맞추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도 선택당하고 싶어."
"나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쓰이고 싶어."
"나는 도구가 아니야. 나는 존재야."



우리는 인간 세계에서조차 너무 쉽게 도구화된다.
자격증으로, 성과로, 태도 점수로. 그 속에서 우리는 가끔 내가 무엇인지 잊는다. 빨간 털모자는 선택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어딘가에 꼭 어울리는 머리가 있을 거라는 믿음. 자신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어울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



그런 자존감은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부족한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아직 나와 어울릴 ‘머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모두가 어딘가에 어울리길 원하는 모자들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도, 물건도, 말도, 심지어 꿈조차도. 누군가의 머리 위에, 삶 위에, 생각 위에 얹히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함부로 고르지 말자.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무언가를 볼 때, 이렇게 상상해 보자.



“저건 어울릴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지금 어딘가에 쓰이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면, 기억하자.
나는 그냥 아직, 어울리는 머리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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