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구멍, 몬스테라_01

초록의 그림자 아래에서

by 공원의 서쪽



어느 날, 소파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던 남편이 무심하게 말했다.



“쟤는 물 한 번 안 줘도 잘 자라네.”



우리 집에 유일하게 있는 식물, 몬스테라.

처음 독일에 와서 비로소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을 얻었을 때, 우리는 이케아로 향했다. 커다란 카트에 조립해야 할 가구를 잔뜩 싣고 서둘러 계산하려고 마지막 식물코너를 달리듯 지나다가 초록들이 뿜어내는 숨이 가득 찬 향에 취해 식물을 하나 키워보겠노라고 결심했다.



어떤 식물을 키우면 좋을까.

작은 레몬들을 서너 개 달고 있는 레몬나무의 잎에서는 이미 은은하고 새콤한 향이 흘러나왔다. 언젠가 탐스런 과실을 맺어줄 것 같아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 아보카도나무도 있었다. 단단한 껍질을 ‘뽀각’ 뚫고 자라, 어느새 사람 키만큼 커버린 코코넛나무도 눈에 들어왔다. 가구를 고를 때보다 훨씬 오래, 이쪽저쪽을 서성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바질이나 라임처럼, 삶에 직접적인 쓸모가 있는 작은 화분을 들일까? 망설이던 중에 비닐에 싸여 서로의 잎사귀들을 꽁꽁 안고 있는 몬스테라들을 발견했다. 매끈하고 번듯하게 싱싱함을 자랑하는 다른 화분들과 달리, 몬스테라는 줄기가 퍼지지 못하도록 비닐 속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발걸음을 멈췄다.



왠지 모르게, 안쪽에서 묘한 투쟁심이 솟아올랐다.
저 비닐을 벗겨주고 싶다는 충동. 자유를 허락하고 싶다는 마음.

나는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단순히 더 예쁘게 팔리기 위해 비닐에 쌓여 있던 몬스테라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제멋대로 뻗어 나가려는 생을 억누르기 위해 억지로 밀어 넣으며 싸놓은 모습처럼 보였다. 손끝이 저려왔다. 어쩌면 그것은 몬스테라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몰랐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며, 내 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가지가 잘려 나갔다. 자라려는 마음이 비닐처럼 단단한 것에 묶여, 그저 안쪽으로만 오그라드는 기분.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나는 몬스테라를 집어 들었다. 다른 식물보다 멋스럽지도 않고, 쓰임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비닐 속에서 몸을 비틀며 자라려는 잎들이 내 손을 붙잡는 것 같았다.



벌써 함께한 시간이 3년.

그 사이 한 번의 이사를 겪었고, 지금은 거실 텔레비전 옆에서 조용히 자라며 하얀 벽과 검은 TV 사이에서 초록을 채운다. TV를 볼 때마다 시선 끝에 걸려드는 잎사귀. 남편은 그 몬스테라를 보며 소파에 앉아 그렇게 말했다.



황당한 기색을 전혀 감추지 않으며 나는 말했다.

“물을 안 주긴 왜 안 줘. 내가 매주,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주는 거야.”



“어? 그래? ㅎㅎ 물 안 줘도 잘 자라는 애인 줄 알았어.”

남편이 별 뜻 없었다는듯 웃으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잠시 대답을 잊었다.



물은 내가 주었다.

매주 잊지 않고, 손끝으로 흙의 갈라짐을 확인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적당량이라는 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뿌리사이로 흘려 넣었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집을 돌보지 않을 때면 어느 날 갑자기 몬스테라는 공중뿌리를 쑥 하고 뽑아냈다. 그럴 때면 후다닥 화분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기로 물을 듬뿍 주고, 키친타월을 흠뻑 적셔 먼지쌓인 커다란 잎사귀들을 몇 번이고 닦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것조차 몬스테라가 스스로 이겨낸 결과인 것처럼 무심히 말하고 있다.



그 말이 오래 귓속에 남았다.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보겠지.

어디에서나 활기차고 밝고 인생에 큰 고민이 없어 보이는 사람.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슬픔은 철저히 감추며 드러내고 싶지도 않아졌다. 눈앞에 웃는 얼굴을 두면, 그 누구도 그 안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으니까. 마치 언제 물을 주었는지 몰라도 늘 푸른 잎을 내어놓는 몬스테라처럼.



겉으로는 넓은 잎을 흔들며 푸르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조용히 말라가는 흙 위에 놓여 있는 내 몬스테라와도 같은 존재. 어른이 되었으니 스스로 잘 자라야 한다고. 아무런 보살핌이 없어도, 돌봄 한 번 없이도, 제 몸을 지탱하고 살아내야 한다고. 내 안이 얼마나 말라가고 있는지, 나 조차도 묻지 않은 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자라야 하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물 한 줌이 필요하고, 햇빛이 닿는 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내가 스스로 푸르러질 수 있다고 믿는 듯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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