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서점에서 추억을 읽고 보고 싶어했다.
미국 사시는 장모님이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 오셨다. 영주권자시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료비가 워낙 넘사벽이라 도착하신 후 바로 병원 투어를 시작하셨다. 14시간 비행을 하실 절도로 건강하시기는 하지만 연세가 있으신 지라 일단 건강검진을 시작으로 백내장 수술까지 며칠 동안 시간을 쪼개 쓰며 한 바퀴 도신 결과, 큰 이상은 없으시고 수술도 잘 마치셨다. 병원 회복실에서 안정을 취하신 후, 근처 한식집으로 모셔 보리굴비를 대접해 드리며 흑석동 사시던 이야기, 당신 대학시절 이야기, 뉴욕 롱아일랜드 노인 아파트 이야기 등 쉴 새 없이 많은 이야기, 한마디로 수다 타임을 가졌다. 자리가 마무리될 무렵 어머님께 여쭤봤다.
“어머님, 5월 연휴 때, 광주, 고흥 가시는 거 말고 오늘 가시고 싶은 데 없으세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지만 뜻밖의 대답을 하셨다.
“오랜만에 서점에 가고 싶네. 나 사고 싶은 책이 있어.”
10여 년 만에 자식들 만나러 오셔서 가시고 싶은 곳이 서점이라니. 너무 의외의 말씀이셔서 나도 아내도 재차 여쭤봤더니 당신 주머니에서 메모지 하나를 꺼내 보여주신다. 일종의 장모님 ‘서점 장바구니’였다.
‘안도현 시집, 문지혁 <going home>, 성경책, 한영사전(콘사이스)’ 이렇게 적혀 있다. 작은 메모지에 볼펜으로 적힌 그 양반의 ‘장바구니’를 보며 순간적으로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시를 일고 싶어 고른 안도현의 시집, 사위도 잘 모르는 작가의 신간 소설집, 특정한 성경책, 그리고 ‘한영사전(콘사이스)’. 이 중 압권은 ‘한영사전(콘사이스)’였다. 아주 오래전, 중학생 때, 어머니를 졸라 샀던 한영사전, 그리고 그때는 사전을 콘사이스라고 불렀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생각들을 파고들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사위는 절대 할 수 없는 말.
“엄마, 요즘 누가 사전을 봐. 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지. 여기 봐, 핸드폰 바탕에 사전이라고 있어.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미국서도 되고. 아니면 뉴욕에도 한국 서점 많은데.”
사위가 끼어들 타이밍이다.
“이봐요, 이여사. 어머님이 그걸 모르시겠어. 어머님, 잘 됐네요. 여기 근처에 교보문고 있어요. 광화문 교보만큼 커서 어머님 찾으시는 거 다 있을 겁니다. 가시죠. 메모지 주세요.”
서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로 소설, 에세이, 시 코너로 이동해 찾으시는 책을 찾아 드렸다. 장모님의 목소리가 빨라지며 안도현 예찬론이 펼쳐졌다.
“내가 안도현을 좋아하는데 안 갖고 있는 걸 보고 싶어서. 자네도 이 사람 시 읽어봐. 정말 좋다.”
라디오 광고 카피처럼 들려온다.
“어머님, 다른 책도 찾아 드릴 테니 한 바퀴 둘러보세요.”
자리를 이동해 사전 코너로 가 한영사전을 찾는데 모든 사전이 다 밀봉돼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사전 속 글자 크기를 어머님이 보실 수 있을까? 어머님을 모셔오고 안내하는 분께 부탁해 밀봉을 풀어 보여주십사 했더니 역시나 어머님이 먼저 말씀하신다.
“아이고야 이게 뵈겠나?”
다른 사전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성경은 큰 글자 버전이 있지만 사전은 예외였다. 빠른 포기.
3권의 책을 들고 계산대로 향하려 장모님을 바라보는데 이 분은 여전히 문학 코너에 몸과 마음을 뺏기신 상태다. 수술 때문에 못 감은 머리를 감추려 쓰신 비니 밑으로 상기된 홍조 띤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머님, 천천히 더 보세요. 저도 책 좀 사갈게요.”
재촉하는 아내 팔을 잡고 근처를 한 동안 배회했다. 장모님, 책 구경, 서점 구경하시라고. 하지만 장모님은 책을 더 고르지도 사지도 않으셨다. 1시간 여가 지나 장모님이 이제 가자라고 말씀하셔서 서점을 떠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안도현, 문지혁 이야기, 왜 이 성경이 좋은 지 등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장모님은 왜 서점에 가고 싶으셨을까? 책을 사시러? 아니었다.
장모님은 정말 서점이 가고 싶으신 거였다. 무수히 많은 책이 꽂힌 서가, 그 안에서 찾고 싶은 그 분만의 추억, 서점이 뿜어내는 특유의 향 등 오감으로 서점을 느끼고 싶으셨던 거다. 그리고 나이를 떠나 아직도 뭔가를 읽고 보고 싶은 그분의 마음을 채워줄 공간에 있고 싶으셨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