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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inArt Jun 05. 2023

 즈음에...

서른 즈음에...

영동 고속도로를 홀로 운전하며 막 문막 인터체인지를 지났을 때로 기억이 난다. 서울의 퇴근길 정체를 피하고자 나름 속도를 내가며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왔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초 여름 차창 옆으로는 초록의 빛깔들이 재빠르게 흘러가고 태양은 저녁 빛을 조금씩 머금어가고 있었는 때였는데 안 그래도 말동무 없는 쓸쓸한 운전길에  충분히 서글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고 있자니 그의 구슬픈 목소리며 통기타 소리가 귀를 타고 가슴으로 옮겨졌다. '아~ 내 청춘은 어디로 갔을까. 나도 늙어가는구나'하며 나이 먹음을 서글퍼하며 영동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때는 다름 아닌 나의 청춘이 끝자락에 달려있었던 스물 아홉 살, 새~~ 파랗게 젊은 시절이었다. 29에 늙는 타령이라니! 이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차의 조수석에 앉아 젊은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던 서른 즈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참 해줄 말이  많지만 가장 먼저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청승 떨지 말고 안전 운전이나 해 인마!"


일흔 즈음에...

며칠 전 마누라상이 장모님과 30분 넘게 통화를 했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냥 뭐 하나 해서 전화했어’로 시작된 장모님과의 통화는 언제나 그렇듯이 곧 전화를 걸어온 이유로 옮겨졌는데, 이번 전화의 토픽은 장인, 장모님의 70세 맞이 여행 이였고 후보지로 스위스, 하와이가 언급되었다고 한다. 일찍 결혼을 하신 두 분이어서 마누라상의 또래 부모님들보다 젊은 편인 동갑의 장인, 장모님이지만 당신들의 나이 먹기도 부지런히 진행되어 이제는 일흔 즈음에 들어섰다. 


쉰 즈음에도 이리 마음이 횡~한데 일흔 즈음에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1년에 한 번 일본으로 두 분을 모셔 골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을 횟수를 늘려서 한해에 두 번씩은 초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딸 한 명씩 잘 키워서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들 계시지만 쉬지 않고 따라오는 나이 먹기는 분명 당신들에게 허전함을 부지런히 공급하고 있을 터이다. 나의 마누라상을 낳고 길러 주신 고마운 장인, 장모님의 '즈음에' 허전함이 십 년 삼십 년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쉰 즈음에...

2023년의 초 여름 도쿄.

오는 10월 내 생일은 조금은 기억에 남을 날을 만들고 싶어 요즘 마누라상과 여행 궁리에 열심이다. 평소 생일을 그리 신중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지만 내 40대의 마지막 생일이 되는 10월은 조금 근사한 곳에서 작은 사치라도 부리며 날을 기억에 담고 싶다. 김광석의 노래 덕분인지 서른 즈음은 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쉰 즈음'에라는 표현은 징그럽기도 하고 굉장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어쩔 도리 없이 나는 '쉰 즈음에'가 되어버렸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성숙했을 서른 즈음의 김광석의 나이 먹기는 애석하게도 그가 서른이 된 후 1년이 지나 커다란 이별을 맞이했지만 나의 나이 먹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언제 나의 나이 먹기가 중단될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아무쪼록 쓸쓸하지 않은 이별이면 좋겠다.


쉰이 된다는 것이 내 마음 한 구석에 가끔은 횅한 바람을 불어넣을 때도 있지만 20년 전의 서른 즈음에가 지금의 나에게는 새파란 청춘이듯, 세월이 흘러 가득 쌓인 나이를 뒤집어쓰고 살아갈 때는 지금의 내가 부러운 청춘일지도 모르겠다. 나이 먹기는 분명 서글픈 일이지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보다 청춘이라는 건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같이 나이 먹기를 하고 있는 마누라상이 옆에 있어 서로의 즈음에를 위로하고 축하해 줄 수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오래오래 서로에게 위로와 축하가 허락되기를 바래본다.

매일 이별하며 매일 새로운 만남을 하고 있는 나의 나이 먹기는 오늘도 기분 좋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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