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_책 중에서
친구 G가 지인들끼리 모여 이어가고 있는 북클럽에서 <인간 실격>을 읽는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을 보면 “진도 외딴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화가 Y가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Y는 나에게 민음사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103 <인간 실격> 책을 내밀며
“이 선생, 이거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 이 선생한테 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사서 읽겠다고 말했었다. 이후로 책을 사긴 했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있었다. 다만 책 앞표지에 있는 에곤 쉴레(1890-1918, Egon Schiele)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 그림에는 관심이 많았기에 한동안 책을 책 앞표지가 잘 보이도 책꽂이 위에 세워 두었었다.
편안함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는 듯 바라보는 에곤 쉴레의 자화상 속 눈빛과 마주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레이첼스의 ‘에곤 쉴레를 위한 음악(Music for Egon Schiele)’이 떠올랐다. 반복해서 그 음악을 듣곤 했다. 피아노와 비올라의 앙상블 (...) 불안과 고통의 아이콘인 '에곤 실레'를 위해 헌정된 현대 발레에 맞추어 작곡된, 미적 감수성이 가득한 음악 앨범이다.
<인간 실격>을 쓴 다자이 오자무(太宰 治, 1909- 1948)는 스스로를 인간 실격자라 자조하며 자기 파멸의 지향을 자살로 마무리한다. 다섯 번째 자살 시도는 그가 39살의 나이였던 1948년에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고 그의 곁을 지키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약을 먹고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함으로써 그의 죽음을 완성한다,
작품에 쓰인 것을 작가 다자이 오자무의 실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어떤 부분은 혼재되어 있거나 사실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작품 속 화자 ‘나’ 요조도 몇 번의 자살을 시도한다.
컵에 물을 채우고 치사량 이상의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3일 동안 죽은 듯이 잠을 잔다. 의식이 회복된 후 제일 먼저 중얼거렸던 헛소리 “집에 가겠다”는 망이었다. 집은 어디를 가리킨 걸까, 요조 자신도 잘 모르는 집 하여간 그렇게 말하고 요조는 엉엉 울었다.
“자, 준비됐어? 담배는?”
“비(비극 명사의 준말)”
“약은?”
“비”
“그럴까? 좋아 인정해 주지”
“죽음은?”
“희(희극 명사의 준말)”
그리고 이와 비슷한 또 하나 반의어 맞히기 유희를 발명
“검정의 반의어는?”
“하양”
“꽃의 반의어는?”
“달”
“아니야 그건 반의어가 아니야. 오히려 유의어지. 꽃의 반의어는 말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꽃 같지 않은 것, 그것을 들어야지”
“그러니까, 그... 잠깐 뭐야, 여자군”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자, 자... 둘이서 좀 더 생각해보자. 그렇지만 이건 재미있는 테마 아닌가? 이 테마에 대한 대답만으로도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 나는 언젠가 누군가와 반의어 놀이를 하고 있을 나를 떠올린다.
“파괴의 반의어는 창조?”
“그럴까?”
“웃음의 반의어는?”
“(...)”
작품 속 요조는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어색함을 못 이긴 나머지 일찍부터 숙달된 익살꾼이 되었다. 어느 틈에 진실을 단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잠자코 받아들이고 속으로는 미칠듯한 공포를 느꼈다.
요조는
'지금까지 제가 이비 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132쪽)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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