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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온 Feb 20. 2024

빨간 벽돌집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차가웠다. 1월 한겨울의 영국의 날씨는 한국의 겨울처럼 살을 에는 추위라기보다는 뼈마디 깊숙이 전해오는 묵직한 추위로 몸을 달달달 떨게 만드는 그런 추위였다. 하필 그렇게 추운 겨울에 우리는 이사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삿짐을 옮길 필요가 없이 우리 몸만 들어가면 되어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삿짐이 도착하는 것은 몇 달 후가 될 테니 불행이라고 해두자.


 아기돼지 삼 형제의 막내가 지었을 법한 2층짜리 빨간 벽돌의 집이었다. 물론 뒷마당도 있었다.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에게 마당이 딸린 빨간 벽돌의 집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설레고 기뻤다. 심지어 계단 아래의 벽장은 해리포터의 팬인 나에게 최고의 공간이었다. 물론 창고로 쓰긴 했지만, 나는 항상 그 벽장을 해리포터 벽장이라 불렀다.


 영국의 집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이 몇 가지가 있었다. 그 몇 가지는 3년 동안 그 벽돌집에서 사는 것을 아주 확실한 방법으로 힘들게 만든 것들이었다. 첫째, 영국의 집에는 히터가 없다. 히터 대신 라디에이터라는 뜨거운 물이 파이프를 타고 흘러 주변 공기를 데워주는 것이 있었는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전혀 따뜻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 집만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1층 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었다. 침실이 있는 2층은 다행히 카펫으로 깔려있었지만 1층은 타일이라 한겨울에는 집이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겨울에 슬리퍼나 양말을 신는 것을 잊고 맨발로 타일을 밟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탭댄스를 터득할 수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방충망의 존재 유무에 대해 크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방충망 없는 게 뭐 어때서? 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벌레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나에게 방충망이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재앙과 같은 일이었다. 무더운 여름, 창문을 열어 순환하는 바람을 느끼려고 해도 바람과 함께 날아드는 벌레들 때문에 고통받았다.


 마지막으로 에어컨이 없다. 영국은 에어컨이 필수일 정도로 여름이 더운 곳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당시엔 영국의 여름이 이상기온으로 40도를 웃돌아 선풍기만으로는 더위를 식힐 수 없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엔 1층으로 내려가 타일 위에 누워 몸을 식히기도 했다. 동시에 내 허리건강도 희생하는 꼴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불만도 많고 불평도 많이 한 집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영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인 나와 남편을 더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기억들이 모여 추억이 되어 어느새 추억이 우리를 지탱하게 되었을 때, 영국을 떠나게 되었다. 벌써 3년이 흘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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