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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끝을 스치는 바람처럼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

by 모래올

얼마 전, 중학생인 첫째 아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동생들을 피해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가 말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동생들의 뒷담화였다. 방학이어서 거의 하루종일 붙어 있다 보니 하루에 열두 번은 싸우는 것 같다. 이런 점이 안 맞는다는 둥, 불만이라는 둥, 답답하다는 둥.. 처음엔 그런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얘기 나누다 보니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부터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야기, 며칠 전 있었던 일 등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게 되었다.


"엄마는 말이야,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 다섯 식구가 모여 있을 때 순간 되게 행복할 때가 있어. 예를 들어, 지난번 그 카페에 갔을 때 말이야. 야외에 앉아 있을 때 바람이 살랑 불면서 코끝을 스치는데 그때 되게 행복하더라. 바람처럼, 그 행복감이 오래 머문다기보다 코끝을 스쳐가는 그런 느낌. 이게 어떤 감정인지 알려나?"


"얼마 전 외할머니를 만났을 때 제가 느꼈던 그런 감정인 것 같아요."


"그래? 그랬어?"


"네, 외할머니댁에서 우리 식구들과 외할머니가 만나 모였을 때 제가 느낀 것과 비슷한 거 아닐까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맞아. 나는 늘 버거워하는 '엄마'가 이 아이한테는 '외할머니'였지.

엄마와 함께 살았던 2년여의 시간은 꼭 엄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의 결혼생활 중 가장 힘들고 우울했던 시간들이었다. 남편은 직장문제로 날마다 스트레스받아했고, 남편과 엄마를 살피며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그 사이에서 극도로 예민했던 그때. 마침 셋째 아이가 생겨 몸도 맘도 너무나 버거웠던 그때, 우리 첫째는 다섯 살, 여섯 살이었다. 잔뜩 예민해져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던 나였는데 어쩌면 그때 이 아이가 쉬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외할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 잘 놀아줬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놀이도 같이 해 주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말 한마디라도 더 붙이려고 아이들을 내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엄마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나의 모진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사 들고 왔었다. 지금도 어쩌다 친정에 가게 되면 딸기도 사놓고, 누가바도 사놓는다. 지난 설에 엄마가 아이들을 안아주니 첫째가 자세를 낮추어 할머니를 안았다. 그 때 다섯살이었던 첫째는 이제 할머니보다 30센티정도 더 크던데 이만큼 컸어도 엄마 기억에 아이들이 좋아했던 간식이어서 그것들을 미리 사다 놓고 내미는 것이 엄마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표현인 것이다. 그땐, 언제나 아이들을 감싸는 엄마가 아이들을 바르게 양육하려는 나에게 방해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사방팔방으로 뾰족했던 시절이었다.



첫째 아이가 며칠 전 3주간의 캠프를 갔다.

출발하기 전 할머니들께 인사드리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며 "할머니, ㅇㅇ이요" 하는 아이의 뒷모습에 울컥했다. 며칠 전 아이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면서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내 마음이 어렵다고 아이 마음속에 '외할머니' 마저 모른척했구나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해졌다. 나는 나이고, 아이는 아이인데 말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첫째와 ‘외할머니’ 얘기를 해 볼까한다. 내 마음이 괜찮은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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