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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신고

아주 보통의 하루

by 모래올

엄마에게 전화하는 일이 그렇게 맘먹고 해야 하는 일은 아닌데, 난 그럴 때가 있다.

엄마와 언제 통화했더라, 벌써 며칠이 지났네, 잘 지내고 계신가, 잘 지내고 계시겠지.. 하는 중에 '가족특집' 예능을 보다 말고 '에이, 전화하고 나면 속이 편한 걸. 지금 하자.' 하고는 프로그램이 채 끝나기 전에 버튼을 눌렀다.



별일 없으시죠?로 시작하는 엄마와의 통화는 서로에 대한 생존신고 같은 거다.

한동안은 내가 드린 신용카드 사용문자가 생존신고였었다. 병원에서 사용한 문자가 오면 전화드려 어디가 아프시냐 했었는데 그땐 병원이나 약국만 가면 그 카드를 사용하셔서 '혹시 일부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암튼, 별일 없으시죠?로 시작해 한참을 통화했다. 아래층 아이들이 없어서 심심하시다고, 자주 연락하고 오가는 집사님이 여행을 가셔서 아주 답답하다고 하셨다.



이렇다 할 사건(?) 이 없는 일상을 엄마도 나도 살고 있다 보니 날씨 얘기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그저 그런 가벼운 수다가 오고 가다 캠프에 가 있는 첫째 아이 얘길 했다. 새삼스럽게도 캠프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얘기하면서 내 새끼 자랑을 늘어놨다. 애가 성실하고, 그래서인지 공부도 잘하고, 캠프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마음껏 자랑했다. 걱정되고 염려가 되는 얘기 말고, 그저 대견한 얘기들 말이다. 엄마에게 첫째 아이 자랑을 한 보따리 풀어놓다 보니 알겠더라. 내가 내 새끼들 자랑을 마음껏 해도 시샘하지 않고, 같이 자랑스러워하면서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라는 걸. 더불어 내 속에서 나온 '내 새끼'들이 잘났다는 얘기는 곧 엄마의 속에서 나온 엄마의 '내 새끼'인 내가 잘났다는 얘기로 들리시는지 "네가 성실하잖아"로 말을 이어가셨다.



햇살이 좋으니 나가 산책을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진짜로 나섰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나는 둘째 셋째와 함께 동네 한 바퀴 돌았다. 바람이 아직 차지만 그래도 좋더라.



'아주보통의 하루'라는 말을 요즘 많이 하던데 엄마의 '아보하'가 내겐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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