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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an 17. 2022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할 이유

20220117

20220117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할 이유


휴학 중 일할 때 출근하는 데 1시간 반이 걸렸다. 아침에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빈속으로 출근하면 오전 10시쯤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게 민망해서 지하철 역 안 편의점에 자주 들렀다. 출근길이라 손에 잡히는 대로 보름달이나 크림빵 같은 빵을 샀다. 겨우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빵을 먹었다. 마음씨 좋은 팀원들이 빵을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마음이 안 좋다 했다. 거울을 봤다. 빵 잘못은 아니었다. 정신없이 출근한 내 모습이 꾀죄죄했다.



아침밥을 안 먹고 살았다. 항상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촌각을 다투는 아침에 조금이라도 빨리 달리기 위해선 공복이 좋았다.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에너지는 오로지 두 다리에만 쓰여야 했다. 소화를 한다고 위장에 쓰이는 건 사치였다. 오늘도 겨우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내일은 진짜로 일찍 나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면 배고픔을 느낄 여유가 생겼다.


내 핸드폰에는 ‘10분만 더’ 알람이 시간대별로 준비되어 있다. 아침에 10분 더 자는 것은 마치 1시간을 더 자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는 수면의 질을 낮추는 행위인 걸 알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10분, 20분 더 자다가 이젠 정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대충 씻고 면도는 피부를 위해 생략해주고 아무 옷이나 주워 입은 후 허둥지둥 나가곤 했다.


요즘 아침을 먹는다. 제대로 한 상 차려 먹는 건 아니다. 일어나자마자 거하게 식사를 하기에는 잠이 잘 깨질 않아 어렵다. 간단하게 견과류나 두부, 샐러드 같은 걸 먹는다. 씹다가 삼키다가 잠깐 잠들었다가 하면서 먹는다. 그것마저 다 못 먹을 때도 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있으면 꽤 그럴듯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아침을 먹는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잠자는 게 제일 좋고 잠을 이기지 못하는 편이다. 학교 다니면서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진짜 밥은 안 먹고 나오는 주제에 말이다. 붙어다녔던 대학교 동기가 나보고 잠만 줄이면 성공할 거라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있다니 진짜 성공할 조짐이 보이는가 싶다.


어찌 그런 위대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가, 그건 아침을 먹어야 뇌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최상의 상태가 된다는 말에 혹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금방 적응해서 내 몫을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뇌가 최상의 상태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매일 우왕좌왕 파닥거리고 있고 가르쳐준 걸 또 물어보고 있다.


다만 뇌가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달콤한 잠을 자다가 일어나 무슨 맛인지도 모를 음식을 씹는다. 그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사실 뇌가 돌아가면 돌아갔지 새로워지진 않는다. 매번 똑같은 생각을 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일을 할 것이고 그러고 집에 오면 무지하게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게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할 이유다.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 생각을 함으로써 이미 시작된 하루에 다급하게 뛰어나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입장에 설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연두부를 먹는다. 두부는 차갑고 그 위에 뿌려진 오리엔탈 소스는 시다. 덕분에 슬슬 잠이 깬다. 곧 오늘 하루 시작할 준비가 됐다는 뜻의 한 문장이 머릿속에 시원하고 상큼하게 떠오른다. 일하러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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