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4
아는 동생의 졸업을 축하하러 반년만에 학교를 찾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작년에 내가 졸업했을 때가 떠올랐다. 친구가 꽃을 사 들고 왔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사진을 찍은 뒤 내가 자주 가던 카페에 친구를 데려갔다. 그곳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꽃과 졸업장을 들고 카페에 들어가자 카페 직원 분이 말했다. 졸업하셨나 봐요.
내가 대답했다. 네, 뭐, 일단은 졸업했네요. 갈 데가 없어서 아직 학교에 더 붙어있기는 하는데.
미소와 함께 답이 돌아왔다. 아직 젊잖아요. 이제 시작인 거죠.
졸업 후 이문동을 뜨고 나서 취업을 하기까지 반년이 걸렸다. 여름엔 사원증을 매고 당당하게 동네를 뜰 줄 알았건만 취업 문턱을 코앞에서 넘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문동을 떠났다. 갈 곳은 없지만 그곳에 있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학교에서 꽤 먼 곳이었다. 지난겨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학교는 물론이고 그 근처 동네도 가지 않고 지냈다.
지난주 아는 동생 J의 졸업을 축하하러 갔다. 졸업하는 날 바로 한국을 뜬다고 했다. 생각이 많은 친구인데 생각만 많은 게 아니라 과감하기도 한 친구였다. 그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말만 하고는 바빠서 잘 못 보고 지냈다. 그런데 이젠 먼 나라로 뜬다고 하니 이번엔 바쁘면 안 됐다. 일을 하루 쉬고 학교로 향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맑은 날에 찬바람이 불었다. 학교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북적이는 본관 앞에서 J를 만났다. 작은 선물을 주고 사진을 찍은 뒤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가서도 자주 연락하자고 말했다. 졸업을 축하하는 말을 이래저래 준비했는데 정작 만나선 횡설수설했다. J를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어 응원의 말을 어수선하게 전하고는 캠퍼스 구경을 하러 나섰다.
원체 소속감이 없었다. 일부러 멀리하려고도 했다. 과한 소속감은 보잘것없는 자아를 집단에 의탁하는 미성숙함이라 여겼다. 그 정도까지 겉돌 필요는 없었는데 인생 전반이 사춘기인 나는 혼자만의 고고함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학교 생활이라 할 게 없었고 친한 친구 두어 명만 가끔 봤다. 하루에 말 한마디 안 하는 날도 잦았다.
간만에 들어가 본 학부 건물은 열려 있었다. 조용한 건물들을 둘러보며 대학 생활 수년을 떠올렸다. 열람실에선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했고 한산한 방학 땐 토익과 자격증 공부를 했다. 집중이 안 될 때는 괜히 자리를 옮겨 중앙도서관 열람실로 갔다. 가는 길에 노천극장이 있는데 공부하기 전에 그곳에서 친구와 가볍게 농구를 하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던 날도 있었다. 도서관 앞에 도착해서는 선선한 날씨를 즐기다 하루를 다 보낸 나를 보았다. 도서관에 들어가 혹시나 하는 맘으로 출입증을 찍어 보았는데 게이트가 열렸다. 덕분에 서가를 두리번거리던 나와 취업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고민하던 나까지 보고 돌아왔다. 캠퍼스 안에 있던 나를 많이도 보고 왔다.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소속감을 느낀 게 아이러니했다.
캠퍼스를 나와서 자주 가던 카페에 다시 가 봤다. 나를 알아 봐주면 좋지만 알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늘 붐비는 카페였고 발길을 끊은 손님을 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단장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고 메뉴판을 봤다. 새로 나온 메뉴가 있었다. 그것들을 한참 보다가 즐겨 먹던 메뉴를 골랐다. 주문을 하고 나니 직원 분이 내게 말했다. 쿠폰은 새로 드릴까요.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여름에 이사를 간다 하지 않았냐 하는 질문과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들었다. 커피를 받아 들기 전까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결국 여기 커피가 자주 생각이 났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카페를 나가면서 덧붙였다. 따뜻해지면 또 올게요.
후배를 축하해주러 가서 내가 들뜬 채로 돌아왔다. 학교가 반가워서 학교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이야기하며 킥킥대다가 J로부터 와줘서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 들었다.
근 며칠 동안은 막 도착한 타지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J의 블로그에서 J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그곳 사진과 함께 보았다.
겨울바람에 휘휘 날아간 응원의 말은 이런 내용이었다.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거기가 좋아지면 오래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