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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r 26. 2024

부유하는 상처 2

골목길

미스 신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세련된 밝은 색의 옷을 즐겨 입었다. 청자켓도 당시 흔하게 유행하던 짙은 색깔보다는 물 빠진 옅은 색깔로 멋을 냈다. 도화동의 경보 극장과 연결되는 좁고 길지 않은 동네길에서 미스 신은 스타였다. 미스 코리아 같은 굵은 파마머리,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슴. 꽃무늬 플라스틱 대야를 허리에 걸치고 목욕탕이라도 갈 때면 보금당 아저씨도 청산 슈퍼 아저씨도 밖으로 나와 곁눈질을 했다. 그녀가 목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는 더 많은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눈은 곁눈질이었지만 그녀의 비누냄새라도 맡으려는 듯 코들은 하늘을 향했다. 개 흉내를 내던 아저씨들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커다란 눈은 언제나 반달 모양으로 웃고 있었다. 방금 지나친 그녀의 뒷모습에 웃음을 흘리거나 어느 한 곳에 박혀 버린 듯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아저씨들.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내 눈에 미스 신은 보호 해 주고 싶은 대상이었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엄마는 아빠에게 문간방 세가 나갔다고 했다. 전라도 이리에서 올라 와 데려 올 친구도 없는 혼자 사는 여자랬다. 살림도 단출해 바로 결정을 했단다.

1주일 후, 동네 끝자락에서 보던 그녀를 우리 집 마당에서 보게 됐다. 우리 식구가 사는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 정면에 그녀의 문간방이 있다. 동네 길 쪽으로 창문을 낸 아주 조그만 방이었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면 누구나 엿볼 수 있는 창호지 창문이 불안했다.


정신 차리자고 다짐하며 운전을 계속했다.

손자를 7시 30분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니 그녀를 본 건 7시 45분 정도였다. 하기 싫었던 일이 뒤늦게 고마워진다.

다음 날, 손자를 내려주고는 들뜬 마음이 됐다. 하지만 그녀는 정류장에 없었다.

방금 지나 친 버스에 이미 오른 걸까? 코 앞의 버스를 놓쳐 아쉬워하는 어느 남자만 멍히 쳐다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방황하며 입으로 나오지 못하는 단어들 사이에서 불분명했던 기억이 모락모락 그림으로 떠 올랐다. 기억의 파편이 점점 자리를 찾아갔다. 마포의 골목길이 선명해진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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