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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Apr 04. 2024

부유하는 상처 7

떠나야 할 사람

손자 녀석을 데려다주는 아침이 기다려졌다. 

늙지 않은 미스 신을 보기 위해 애썼다. 가슴속 심해로부터 부유하는 상처가 믿기지 않았고 재발한 아픔에 괴로웠다. 아이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류장이 보이는 교차로 옆에 차를 세운다. 그녀는 왼쪽에서 꺾어져 내 앞쪽으로 걸어올 것이다. 가늘기만 한 다리로 부드럽게 걸어 내 앞을 스쳐간다. 주저함에 뒤 돌아보지 못한다. 방금 지나버린 찰나를 그리워한다. 백미러에 집중해 본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내일을 기약한다. 나는 예전의 꼬마가 된다. 야마꼬가 된다.


두 주후, 딸 부부의 여행이 끝났다. 손자는 돌아갔다. 나의 아침 외출은 계속됐다.

무심히 집을 나서 도서관 앞으로 간다. 항상 여기서 꺾어져 버스 정류장으로 갔으니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면 된다.. 7시 35분이 넘었다.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7시 40분..  7시 50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8시까지만 기다려보자는 생각.. 8시가 되어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샛길이 있나? 그냥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릴 걸 잘못했나? 실망한 손으로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려 할 때, 오른쪽 집에서 그녀가 나왔다. 도서관 옆의 두 번째 집이었다. 그녀의 집이었다. 다리가 일자로 모아지는 걸음 거리, 보폭이 좁아 위태로워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안심한다.


겨울이었다. 

미스 신은 이사를 가고 딱 한 번 우리 집에 들렀다.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를 가지러 왔다.

갑자기 방을 비워 달라고 해 미안했다며 엄마가 귤껍질로 끓인 차와 시루떡을 내왔다. 엄마는 눈짓으로 나를 방에서 내몰았다. 마지못해 방을 나와서는 마루에 서서 방 쪽으로 귀를 곤두 세웠다. 목소리를 낮춘 엄마의 목소리가 창호지 문틈으로 새 나왔다.

"아버님은 좀 어떠셔? 그게 말이 돼, 기차 폭발 이라니.."

"많이 놀라시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으세요."

"그만하길래, 다행이네.. 죽은 사람도 많은데.. 그건 그렇고, 미스 신도 결혼해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살려고?"

고요했다. 마루로 밀려드는 찬바람에 발이 시릴 때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이 못 헤어지겠데요.. 내가 불쌍해서 못 떠나겠데요.."

방안의 어색한 공기가 나에게 까지 전해졌다.

"아저씨 오실 때 됐죠? 저 이제 가볼게요.. 편지 고맙습니다."

"그래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봐!"

"편지는 더 안 올 거예요. 바뀐 주소 아버지께 알렸어요."

찻상이 밀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건넌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스 신이 다부지게 외쳤다. "야마꼬! 나 간다.!"

나는 내다보지도 못하며 들리지 않을 안녕히 가세요!라고 소리쳤다.

얼마 후였다. 원식이 엄마는 미스 신이 짱개를 따라 미국에 갔다고 했고, 창오 엄마는 그녀가 고향 이리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녀가 어디로 갔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나이 든 나는 했다.

더 이상 듣지 못할 야마꼬라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만 퇴적층이 되어 내 몸 어딘가에서 굳어졌다.

잊지 못할 것을 잊으려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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