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니 어떻게?
여름 방학이라 기숙사에 있던 아들이 집에 와 있다.
마침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있을 아들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래전부터 아들이 분주하면 아빠는 불안해진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데이트가 있단다.
얼마 전에 소개팅이 있었길래.. 그 아이를 만나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이번에도 소개팅이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그럼 누굴 만나는 거야?
공원에서 만난 여자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공원에서?
요즘 공원으로 헌팅 다니냐?
아니란다.
공원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데 여자애가 다가와서
전화번호를 물었단다.
네 번호를? 아빠는 기겁을 한다.
여자애가 왜? 아들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몰라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니지..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아빠 모드로 돌아간다.
그래서 뭐 하는 앤 데? 학생
참, 인종은? 아시안
나이는? 동갑
옷차림은? 생긴 건?..
농구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와 전화번호를 묻는 여자.
늙은 아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
날라리..
아빠는 옛날 사람이 맞다.
아들의 엄마는 부자의 대화에 웃기만 한다.
아들이 번호를 따였다.
번호만 묻고 다니는 것보다는 좋은 뉴스다.
일단은 안심을 하고 다음은 걱정이 시작된다.
껌 씹는 누나들에게 둘러 싸이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내색은 못 한다.
말은 안 하지만 아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변모하는 세상이 벅차기만 하다.
아빠의 마음을 알리 없는 아들.
한껏 멋을 내고 집을 나서는 아들이 아빠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여자애와 만나고 있는 동안 제발 전화 좀 하지 말란다.
창피하단다. 뭐 알겠다고 건성건성 대답은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생각지도 않은 아들의 카톡
데이트는 망했고 지금 집에 온 단다.
집을 나간 지 겨우 두어 시간이 지난 후였다.
괜히 웃음이 났다.
걱정을 했지만 이런 엔딩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여자애를 만나 대화를 했는데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단다.
아들은 박물관을 좋아하는데 여자애는 소름 끼칠 정도로
싫다고 하고..
여자애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에 아들은 질색을 하고..
책, 영화, 취미..
아예 관심 분야가 달랐단다.
시간 낭비하기 싫어 햄버거 하나씩 먹고 헤어졌단다.
뭐가 이리 차가워? 요즘 애들 이러나?
예의 상 디저트 샵이라도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껌 씹는 누나도 아닌데..
자기들끼리야 쿨하게 만남을 중단하고 더 이상의 시간낭비를 줄였다고 하는데 이런 쿨함 때문에 더욱더 이성과의 만남이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서로를 바라볼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낯선 이를 만나러 나가는 아들을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들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본 그 아이에게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