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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Nov 18. 2024

눈물 한가바지 케익 공수기

51인 교사의 비전 이야기 '퓨처티처' 대전 출간 기념회

빵집 사장님은 출간기념회에 쓸 케익이라는 말에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히 무안해져 개인 저서가 아니라 전국의 선생님 51분이 같이 쓴 책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케익 만드는데 혼을 넣어달라며 책도 한 권 드렸다. 케익을 대전까지 망가지지 않게 잘 가져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까똑!

금요일 퇴근 무렵 뜬금없이 밀알쌤이 말을 건넸다.

“내일 오실 때 케익 준비됐을까요?”

개인 연락을 다 주시고 웬일이실까. 반가운 마음에 얼른 대답했다.

“앗, 깜짝!!! 내일 아니고 모레”

매사 철두철미한 밀알쌤도 실수를 하시네! 혼자 중얼거리며 답신을 보냈다. 그런데 대답이 없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든다.

“케익은 준비됐습니다. 오늘밤 픽업 갑니다.”

밀알쌤의 침묵. 불안함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설마 내일인가요?”
 바로 답신이 왔다.

“내일입니다^^”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었다고? 그럴 리가! 밀알쌤이 착각할 수도 있잖아. 단체 카톡방을 후다닥 뒤졌다.

‘퓨처티처’ 출간기념회 11월 16일 토요일.

순식간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헉, 케익! 케익은 오늘 밤에 가지러 가기로 했지. 휴, 다행이다, 앗, 기차표! 그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코레일 홈피에 들어가 빈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모든 좌석은 매진. 버스를 타야 하나? 남편한테 태워 달랠까? 잠깐 내일 산행부터 취소하자. 일요일 기차표도 반환했다.

저녁밥도 먹지 않고 ‘기차표’ 클릭질이 시작됐다. 떴다 한자리, 토요일 새벽 시간대, 일단 사고 보자. 있는 게 어디냐 싶어 잡아놓고 또 새로고침 하며 빈자리 확인. 그렇게 더 좋은 시간대를 찾아서 열 번도 더 샀다 반환했다를 반복했다. 밤 10시쯤에야 겨우 시간대가 얼추 맞는 KTX 티켓을 거머쥐었다. 케익 없는 출간기념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밀알쌤이 아니었다면 필시 토요일 새벽 북한산에서 머리 쥐뜯었을 것이다.     


토요일 아침 케익을 안고 집을 나서는데 온 식구들이 뒤통수에 대고 렀다.

“마누라, 기차번호 잘 보고 타고 대전역에서 꼭 내려!”

“엄마, 케익 두고 내리면 망한다.”

“성심당 빵도 잊지 마!”


놀리지 말라고! 소리 빽 지르고 나왔다. 우리 식구들에겐 이제 나의 허술함과 구멍은 일상이다. 최근엔 있었던 일화 하나만 소개하겠다. 추석 연휴를 즐기려고 거금을 들여 호텔 1박을 예약했다. 그런데 그 전날 오후 8시쯤 전화가 왔다. 왜 체크인 안 하시냐고. 내일인데요, 라며 반문했다. 당황한 호텔직원 확인 후 전화하겠다며 끊었다. 순간 깨달았다. 또 내가 사고 쳤구나. 거실에 있던 남편도 딸들도 이젠 뭐 당황스럽지도 않다는 표정. 잠시 후 걸려온 호텔직원에게 울면서 사정했다. 지금 준비해서 가도 1시간이나 걸리니 부디 객실이 있으면 변경해 주시라고. 호텔직원은 매니저와 상의해 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취소한 고객 덕에 하루 늦게 투숙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긴 했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해피엔딩.      

맞춤 케익은 우리 책처럼 앙증맞았다. 파랑 빨강의 보카시(업계에서는 그러데이션을 이렇게 부른다) 바탕에 ‘퓨처티처’라는 까만 네 글자가 당당히 박힌 게 만족스러웠다. 이걸 망가지지 않게 잘 들고 가야 할 텐데. 복잡한 전철에서 누가 이걸 치기라도 한다면? 안 되겠다. 택시를 타야겠다. 1년에 한 번 탈까 말까 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기차역 대기실에서는 비둘기 놈마저 냄새 맡고 얼쩡거렸다. 별 게 다 신경 쓰이게 한다. 기차 안에서도 신줏단지 안듯 테이블에 모셨다. 옆자리 아저씨는 자꾸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날 불안하게 했다.


대전역에 도착 후 망설임 없이 또 택시를 탔다. 필시 나란 캐릭터는 낯선 곳을 어리바리 헤매다 사고 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님께도 특별히 부탁했다. 귀한 케익 망가지지 않게 천천히 가달라고.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 카페 엘리에 도착했다. 이로써 출간기념회 케익 배달이라는 나의 미션은 무사히 완료됐다!

케익을 보고 선생님들께서 너도나도 예쁘다고 해주셨다. 구멍 숭숭 포롱쌤은 그 순간이 정말 뿌듯했다. 웃음과 감동, 재미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었던 51인 선생님의 비전 이야기 ‘퓨처티처’ 대전 출간기념회는 대성공이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 케익 하마터면 다시 모시고 서울 갈 뻔했다. 하지만 역시 내가 누군가. 인복 하나는 타고나지 않았던가. 아풋쌤이 케익 추첨으로 내 번호 집었더라면 포롱쌤은 그 자리에서 울부짖었을 것이다. 아풋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말: 행사가 끝나고 케익 당첨된 따빛쌤의 사랑스러운 5학년 아드님이 내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케익 감사합니다. 잘먹겠습니다.” 넙쭉 인사를 했다. 경황 없어 어버버 했는데 이제야 말한다. 아들~ 그 케익은 내가 가져온 게 아니라 밀알쌤이 준거야. 아~ 또 머리 쭈뼛 섰다. 밀알쌤이 그날 내게 카톡을 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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