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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post Nov 04. 2024

억지 면담

교육행정 창작소설 <나는 첨부물입니다> #04

다음날 아침, 학교 밖 조찬 회의가 없어서 비서실로 출근한 나는 대학 본부와 단과대학 사이에 미묘하게 감도는 긴장감을 느꼈다. 몇몇 단과대학장이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총장께서 출근하시기도 전에 총장실 문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예산 재조정과 지원 구조 변화 소식은 본부 입장에서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지만, 각 단과대학에서는 연구와 교육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총장께서 공관을 출발하셨다는 연락을 받으며 나는 본부 앞 국기게양대 계단을 내려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총장께 드릴 짤막한 보고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미끄러지듯이 정확히 내 앞에 차를 멈춘 김 선생님의 운전은 오늘도 칼 같은 장인의 매력을 보여 주었다.     

차 문이 열리며 총장께서 나오셨다.


인사를 하는 나에게 “어, 현비서! 오늘 얼굴이 어째 무거운데...” 나보다 더 먼저 내 얼굴을 살피시는 총장이시다.     


“아, 예. 몇몇 단과대학장들이 총장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허허, 그래? 어제 일이 벌써 귀에 들어갔구먼.”

“처장들이 자기 소속 대학 학장에게 쪼르륵 달려갔던 모양이야. 예상은 했었지만, 아침부터라니!”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시다.     


계단을 오르고 현관을 거쳐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동안에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현 비서, 부총장 하고 현 비서만 면담 자리에 들어오지. 장소는 접견실로 하고.”

“자넨,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하게. 아마도 그것이 현실적인 목소리가 될 거야.”     


길쭉한 타원형의 접견실에 면담 자리가 마련되었다.  총장님의 좌측엔 부총장이, 우측엔 내가 앉았다.     


먼저, 문과대학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평소 온화한 어조에 비해 무거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총장님, 이번 예산 조정이 결국 우리 단과대학에까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연구비 지원이나 인력 충원이 원활하지 않다면 문과대에서 추진하는 연구 프로젝트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겁니다. 교육 질 하락은 물론이고, 학문 발전에도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총장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차분히 답하셨다.     


“학장님, 말씀하신 부분에 저도 공감합니다. 다만, 예산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모든 학과와 연구 부서가 함께 고민해주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연구 지원 방식에서 각 부처와 협력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이때, 자연대학장이 팔짱을 낀 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총장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우리가 단합해야 한다는 말씀 이해합니다. 하지만 자연과학의 특성상 실험 장비와 연구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지원 축소가 현실이 되면 연구가 중단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과학은 시간과 자금이 투입되어야 결과가 나오는 분야입니다.”     


옆에 앉아 있던 공대학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거들었다.     


“총장님 말씀대로 효율적인 예산 운영이 필요하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각 단과대학이 입게 될 타격은 학문 발전의 한계를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번 예산 재조정으로 저희 학과에서 한창 진행 중인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긴다면, 학과의 명성은 물론 연구자들의 동기도 크게 떨어질 것입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부총장님은 긴장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애쓰며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였다.     


“각 단과대학이 직면한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학교가 전반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본부와 단과대학 간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희도 무턱대고 예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각 단과대학의 필요를 파악해 가면서 효율적인 배분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그러나 단과대학장들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본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각 단과대학이 요구하는 지원과 본부의 현실적인 자원 배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모두 느끼고 있었다.     


회의 내내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이 지점에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 학장님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모두가 알고 있듯, 학교의 운영 방향은 단기적인 성과에 좌우될 수 없습니다. 각 단과대학의 연구와 교육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본부와의 소통을 통해 유연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기입니다. 특히, 이번 재조정에 따라 단과대학별 우선순위나 핵심 연구 과제들을 조정하는 논의도 필요해 보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이번 면담의 주도자인 의대 학장이 마지막으로 나섰다.


“좋은 얘기입니다. 저희 단과대학에서도 예산 재조정에 대비해 주요 프로젝트와 자원 분배를 다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학교가 전반적으로 연구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모든 단과 대학 구성원 들은 아주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본부에서 납득할 만한 지원책과 계획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만만치 않은 요구에도 총장님은 가볍고 단호하게 면담을 마무리하시며, 이번 회의를 마무리하며 단과대학장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셨다.     


“각 단과대학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변화는 학교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임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함께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면서, 각 학과의 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방안에 집중합시다.”     


면담은 끝났지만, 총장실을 나가는 학장들 사이에 풀리지 않은 긴장감과 총장실을 향한 불만이 여전히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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