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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post Nov 05. 2024

설득의 과정, 하나

교육행정 창작소설 <나는 첨부물입니다> #06

학교 본부와 각 단과대학 간의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총장님은 예산 재조정과 관련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규모가 큰 단과대학 몇 곳과의 협력을 우선적으로 끌어내기로 결심했다. 그중에서도 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 그리고 의과대학은 연구 지원과 장비 예산이 중요한 만큼, 본부와의 협력 없이는 정책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 분명했다.


먼저 자연대학장을 별도로 만나 설득하기로 하셨다. 회의실에서 단둘이 마주 앉은자리, 총장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뒤편에 의자를 두고 메모를 시작했다.


“학장님, 이번 정책이 결코 쉽지 않은 요구를 하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학장님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번 예산 조정이 여러분이 진행 중인 연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최대한 신경 쓸 것입니다.”


자연대학장은 손끝을 톱니처럼 교차시키며 답하셨다.


“총장님, 연구비가 줄어들면 우리 쪽 프로젝트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실험 장비와 재료 비용이 줄어들면 연구의 질이 떨어질 수 있어요. 본부에서 좀 더 확실한 보장을 해 주셔야 저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내밀었다.


“이 자료를 봐주시죠. 현재 예산 재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장기적인 목표 아래 자연대의 각 학과에 우선 배분될 항목을 세분화했습니다. 자연대의 주요 연구와 관련된 핵심 프로젝트는 보호하고, 추가적으로 산학협력 등을 통해 필요한 지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자연대 학장은 자료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총장님. 이 방안이라면 저희도 협력할 의향이 있습니다. 다만 산학협력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겠네요. 그 점만 조율된다면, 저희도 정책 실행에 협조할 수 있습니다.”


자연대 학장이 돌아간 후, “아주 고집 불통이야, 학교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연대 한 곳을 지키겠다는 속셈이 괘씸하지만, 교수 숫자나 학문 분야의 숫자가 많아, 만만치 않은 상대야” 총장께서 나를 보며 한숨과 함께 넋두리를 하신다.


점심을 간단하게 교내 교수회관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이어서 공과대학을 설득하기 위해 공과대학장과의 자리를 가졌다. 공대학장은 회의 내내 정책 변화에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혀왔기에, 설득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총장님도 알고 계셨다.


공대학장은 이미 무거운 표정으로 총장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장님, 공과대는 특히 연구 개발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여기서 예산이 줄어들면 앞으로 실험 인프라와 연구 인력 충원이 어려워질 것이고, 이는 곧 학과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겁니다.”


총장님은 신중하게 답하셨다.


“나도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해요. 그래서 공과대학의 필수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예산 항목은 최대한 줄이지 않을 방안을 검토하고 있소. 이번 정책을 통해 우리 학교가 글로벌 연구 중심 대학으로 거듭나려면 공과대학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더구나, 공대는 나의 고향 아니요. 나도 공대 학장 노릇을 3번이나 했고요."

"대학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학장이 나를 좀 도와 주시요"


공대학장은 고개를 숙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글로벌 연구 중심 대학을 만들겠다는 총장님의 비전은 저희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과대학이 단기적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 부분은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부에서 약속하신 지원이 확실하다면 협조해 보겠습니다.”


총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공과대학장님의 결단에 감사를 표했다.


공대학장이 자리를 떠나자, “역시, 공대야” 하시며, 총장님은 본인이 공대출신임을 뿌듯해하시며, 나를 보며 칭찬의 말을 이어나가셨다.


“저 친구가 말이야, 내가 학장 때 기획실장을 시켰더니 일을 무지하게 잘하더라고. 일이 생기면 확 밀어붙이며 성사를 시키더라고. 그때부터 저 친구, 누굴 설득하고 일을 추진하는 데는 탁월한 감각을 뽐냈었지.” 총장님은 잠시 그때를 회상하시는 듯 흐뭇한 미소를 담고 한숨을 덜어내고 계셨다.

     

자. 이제 마지막은 만만치 않은 의과대학이 남았다. 인문대 학장이야 총장님과 동기이고 젊은 교수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함께한 동지인지라. 전화 한 통으로 통했다.

“오래된 친구가 제일 이구먼.” 전화기를 내려놓으시며 커피 한잔을 들이켜시며 한참을 말이 없이 눈을 감고 계시던 총장님께서 “자. 의대는 직접 가보자.”하셨다.


“현 비서가 전화 한 통 넣어 주고 준비되면 떠나자” 하시며 집무실로 이동하시며 “떠나기 전에 밀린 결재하고 가자.” 하셨다.     


결재 준비에 비서실과 각 사무실이 바빠지고 모처럼 비서실에 활기가 돌았다.     


나는 차 한잔을 준비해서 마시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의과대학 학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총장 비서실 현비서관입니다. 학장님 계시면 부탁드립니다.” “총장님 전화 이신가요?” 만만치 않은 깐깐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 아닙니다. 제가 통화를 드리려 하는데, 오늘 총장님을 모시고 학장님을 뵈으러 출발하려 합니다. 언제가 좋을까요? 박 선생님!”


저자세의 나의 목소리에 깐깐함이 약간 줄었다. “학장님 일정은 4시에서 6시가 빕니다.” “학장님 저녁은 선약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없습니다.” “아! 그러시면 5시에 학장실로 총장님께서 찾아뵙는 것으로 일정을 좀 잡아주세요. 저녁은 두 분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일정은 서로 비워 놓는 게 좋겠습니다.” “예 그렇게 할게요. 그러면 비서관님이 지금 학장님과 통화하시겠어요?” “예, 학장님 부탁드립니다.”


의대학장과의 통화는 무리가 없이 진행되었다. 전화를 바꾸어 주면서, 노련한 의대 학장실 박 선생은 요약보고를 빠르게 했던 모양이었다.

     

오후 4시 55분, 나는 총장님을 모시고, 연건동 의대학장 비서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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