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부물의 역할
교육행정 창작소설 <나는 첨부물입니다> #03
오후 늦게 관악캠퍼스에 도착하자,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진짜 회의가 남아있다. 총장님과 함께, 부총장, 대학원장, 각 처장∙본부장들과의 본격적인 논의다. 오늘 장관 회의에서 나온 지원 정책, 예산 관련 이야기들이 대학의 운영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가 될 터였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부총장을 비롯해 각 직무를 맡은 분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들도 몇몇이 보였다. 총장께서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입을 여셨다.
“오늘 장관과의 회의 내용은 꽤 심각했습니다. 각자 궁금한 점이나 논의하고 싶은 부분이 많을 겁니다. 하나씩 다뤄봅시다.”
처음 입을 연 건 기획처장이었다. 그는 오늘 회의에서 다뤄진 예산 지원과 관련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총장님, 이번에 장관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지방대에 대한 지원은 우선적으로 이루어질 텐데, 우리 학교로 배정된 예산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 아닙니까?”
총장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셨다.
“그래요, 기획처장 말씀대로입니다. 지방대 지원 강화 방안이 이루어지면 우리 대학교와 수도권 소재 대학들의 예산 일부가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할 일은 다 하면서, 효율성을 높여야죠. 그래서 장관과의 논의에서 강조한 점도 바로 그겁니다. 각 대학의 위치와 특성을 고려해 필요한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제시해야 해요.”
학사부총장이 나서며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결국 예산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데, 우리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체감할 변화가 있을까요? 특히 연구 지원이나 학생 복지 부분에서는 큰 차질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됩니다.”
“아직은 정확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예산 재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모든 운영 항목에서 우선순위를 새롭게 매겨야 할 것 같습니다. 연구나 복지 지원처럼 절대 줄일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대신, 조금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부분부터 검토해 나가자는 계획입니다.”
총장께서 답을 하시자 대학원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대학원 연구 정책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대학원생 연구 지원은 더 강화돼야 할 부분이니 이 점도 함께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책적인 부분은 제가 따로 논의해서 구체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입을 연 건 총무처장이었다.
총무처장은 교육부 관료로 서울대학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한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본교 졸업생으로 누구보다도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학교 사정에 밝은 편이었다.
그는 오늘 회의에서 논의된 대학 지원 구조의 변화와 관련해 현실적인 우려를 표했다.
“총장님, 장관님 말씀대로 정책이 변하면 우리도 행정 절차나 규정 정비가 필요할 텐데, 대규모 변화는 행정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도 충분히 감안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총장님이 깊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맞아요, 총무처장. 정책 변화에 따른 행정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산 효율화 방안을 검토하면서 동시에, 행정 각 부서에서도 지원 제도를 손볼 방법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총장께서 안경너머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시며, 질문을 하셨다.
“현 비서관, 다른 대학의 분위기를 어떤 것 같나? 오늘 7개 대학이 모였고 장관과 정책실장이 회의에 함께 했으니, 장관 비서관과 대학 수행원들의 분위기가 곧 그 대학의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되네만... “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오늘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방 대학의 분위기는 다소 고무적입니다.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또 용두사미 격인 정책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대학의 역할에 대한 요구와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총장님과 행정처장의 말씀대로 행정적 지원도 이번 변화에 맞춰 신속히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각 부서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서로의 지원 방안을 보다 효율적으로 연계하면 좋겠습니다. 예산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학내 구성원이 느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이번 기회가 우리 서울대가 대학사회의 리더로서의 자리를 다시 한번 명백하게 하고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지방 대학들의 다양한 의견과 고충을 정리해서 효율적인 발전방안을 마련하여, 정부와 국회 그리고 청와대에 전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부총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힘을 실어주셨다.
“좋은 의견입니다. 특히 연구와 복지 지원을 적절히 유지하려면, 우리 부처 간의 연계도 필수적이지만 범 국가적인 협조가 더욱 필요합니다. 다음 회의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 몇 가지의 검토가 이루어졌고 회의는 점차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각 부서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해지며, 남은 과제가 하나둘씩 명확해졌다.
이번 변화가 당장 큰 도약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닌 책임을 다하는 길이 대학과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이제 오늘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