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꼰대란 말을 들은 곳은 고등학교였다. 학교 화장실 한 귀퉁이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불량 감자들이 '야 너네 꼰대 나타나면 바로 튀어야 해, 여기서 들켜 우리 집 꼰대가 알면 뒤집어진다' 하며 지껄이는 소리 속에 꼰대들이 있었다. 꼰대는 선생님을 지칭하기도 아버지를 말하기도 했었다. 특이한 점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 '꼰대'는 어렵고 불편한 대상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어른임을 잊지 않고 부르는 일종의 별칭이었다.
요즘의 꼰대란 말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두려움이나 어른스러움 보다는 낡고 싫어서 버려야 할 것을 말한다. 꼰대가 붙으면 일단 멀리 하고픈,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귀찮은 존재가 된다.
꼰대들, 꼰대 생각, 꼰대 정당, 꼰대 선배 그리고 신 꼰대..
꼰대를 붙이는 대상도 점점 더 다양해진다.
꼰대 열풍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여의도에서도 서로에게 '네가 꼰대다' 외치는 소리가 바깥까지 크게 들린다. 내가 보기엔 양쪽 모두가 꼰대인데, 서로 먼저 '꼰대 탈출'을 시도하려고, 다른 한쪽을 꼰대라 몰아넣고는 혼자만 쏙 빠지려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씁쓸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이어폰을 꽂고, 스포티한 옷차림으로, 커피를 들고 거리를 오가는 신중년이라 불리는 어르신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이로만 보면 그들은 원조 꼰대들이다. 원조 꼰대는 70년대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을 이루어온 60대 70대가 주를 이룬다. 어려웠던 시절, 가정과 회사를 위해서 나를 숨기며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이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니 스쳐간 아쉬움이 많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즐기는 음악과 옷 그리고 커피는 아쉬움의 표현이다.
원조 꼰대들 중에는 여전히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해서 아직은 할 일이 남았다며 꼰대질을 멈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원조 꼰대들은 본인이 꼰대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남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하여 그들이 장기로 삼았던 큰 목소리를 버리기도 한다. 어린 시절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는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희생정신이 투철하며, 성실함'이 아직도 그들과 함께 한다
원조 꼰대의 후속세대인 50대를 전후한 세대를 민주화 세대라 한다.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며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길을 가는데 한몫을 한 주역들이다. 그런데 원조 꼰대들의 고리타분한 꼰대질을 비난하며 민주와 정의를 외쳤던 그들이, 요즘 이상해졌다. 모두가 함께 외쳤던 '공공의 민주와 정의'는 잊어버리고, 자기가 들었던 돌멩이만을 기억하며,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돌팔매 질을 하고 있다. 선택적 정의인가, 기억의 조작인가? 돌멩이를 함께 날라주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보내고, 나 혼자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가? 투쟁의 기록을 훈장으로 바꾸어 찬 그들의 생활기록부에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임, 정의감이 투철하며 수학능력이 뛰어남'이라 적혀 있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활용하여, 자신의 영역만을 지키며 주변을 해치면서도 이를 정의라고 주장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새로운 꼰대 집단, '신 꼰대'가 되었다.
신 꼰대가 일진이라면, 30-40대에서도 이진 꼰대가 등장한다. 마치 삼사십 년은 사회생활을 한 것처럼 '나때'를 외치는 모습을 사십을 전후한 나이에서 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마도 그들은 원조 꼰대인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나는 절대로 저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으며, 신 꼰대를 보면서는 '나도 매사에 투쟁과 비판을 생활화하면 저들과 같은 기회가 올 것이다'는 기대감을 키웠을 것이다. 그들은 이른 나이에 벌써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진 꼰대는 참으로 밉상이다. 동년배와 선후배 모두가, 멀리하고 싶은 대상이라서 그들을 만나면 그 어떤 꼰대보다 더 질색하게 된다. 그들의 생활기록부에는 '아이큐가 높습니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나 가끔 엉뚱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라고 적혀있을 것이다.
꼰대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이라 가정한다면, 꼰대를 나이에 따라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시대와 가치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원조 꼰대는 시대 현실을 직시하며 타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가슴에 묻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반면, 신 꼰대와 이진 꼰대는 현실에 맞지 않더라도 그들의 철학과 가치를 고수한다. 더 나아가 본인의 철학과 가치에 현실을 강제로 맞추려 한다.
내 것을 놓으려 하지 않는 것
내 생각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것
내 기준으로 다른 이를 평가하려는 것
세상 만물이 내 손안에 있소이다
나이와는 무관하게
모든 꼰대는 '나와 너를 가르는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 잣대가 꼰대를 만든다.
이제 원조 꼰대의 칼은 무뎌졌고, 이진 꼰대의 칼은 아직은 날이 거칠다. 그러나 신 꼰대의 칼은 시퍼렇게 날이 서있고, 그 칼끝은 우리를 향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하기에도, 아주 싹 베어버리기에도 충분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
신 꼰대가 칼을 바로써야 우리 사회가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