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열풍이 불고 있다. 식는가 싶은데 뜨거워지고 뜨거울만하면 다시 식히는 사람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를 통해 이득을 보려 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라, 이런 작전이 잘 통하는가 보다. 비트코인은 걷기보다는 뛰기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겐 꽤나 매력 있는 가치(value)를 가지고 있다. 버스를 타며 내던 코인과는 너무도 달라서 이미 우리에겐 가상의 코인이 아닌 진짜 돈(money)이 되어가고 있다.
학교 사람들을 돈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색한 일이지만,
우리 대학에는 돈을 내고 다니는 사람과 돈을 받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돈을 받고 다니는 직원이다. 우리 대학의 월급날은 17일이다. 1일부터 말일까지 일한 대가를 매월 17일 날에 받는다. 언젠가부터 그날이 오면 '내가 밥값은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가끔 들곤 한다. 몇 년 전부터 우리 대학에는 신입직원 공채를 통해 값비싼(우수한) 후배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어느 신입직원이 첫 달 월급이 입금된 통장을 확인하고는 '이거 2주 치 봉급이지요?' 하고 묻기래 대답을 하기 어려워 그냥 웃었다는 동료 얘기를 들었다. 많은 직장의 월급이 25일을 전후해서 후불 성격으로 지급되기에, 뜬금없이 월 중간에 주는 우리 대학의 17일 봉급날이 낯설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너무 적은 금액이 실망스러워 '혹시 2주 치 아닌가' 하는 반쯤의(그러나 허망한) 기대를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우리 대학의 신규 직원들은 봉급에 비해 많은 일을 한다. 대학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가성비 좋은 사람을 쓰고 있다. 나도 그랬고 내 선배도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짬이 생기면 나와 비슷하게 '어? 내가 밥값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어느 순간에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 밥값은 어떻게 가늠하지?
대학에서 직원에게 요구하는 가장 큰 밥값은 '행정 서비스 제공'이다. 이 말을 듣는 나는 늘 기분이 좋지 않다. 행정이 관리냐 서비스냐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서비스라는 용어에서 풍기는 그 '을의 입장'이 싫다. 행정을 서비스라 해야 하나? 만일 그렇다 치면 서비스의 대상은 누구이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사회봉사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교수도 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은 '고유한 영역'이기에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봉사는 경우에 따라 몇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봉사는 단어 그대로 사회서비스를 말함이 분명한데, 사회서비스는 대부분 학교 밖의 일이다. 소속은 학교 안에 두고 활동은 바깥세상일이다 보니 잡음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의 실천이라면 당연히 권장되어야 할 활동이지만, 권리와 주머니를 생각하고 밥그릇을 차지할 생각이라면 머리가 많이 복잡해진다. 복잡한 일은 따지기 어려워 내 생각을 단순하게 말하면, 우선 학교 안에서 밥값을 충분히 하고 난 후. 그래도 여유가 있다면 남은 힘을 바깥쪽 서비스에 썼으면 좋겠다. 얼마 전, 모 당의 정치인이 경쟁하는 상대에게 수신제가(修身齊家)부터 먼저 하라고 해서 욕을 한참 먹었지만, 집안일을 먼저 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서라면 돈 낸 사람이 서비스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돈을 내는 사람은 학생이므로 학생이 서비스의 주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 대학에서는 돈 받는 사람의 권리와 요구가 더 많고 더 강력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요되는 예산과 인력의 소모가 많은 편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랜섬 게임을 하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대학에서 서비스 혜택을 가장 적게 보는 사람이 학생들이라 생각되어 안타깝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있다.
만약 학생의 권리는 바닥이고, 돈 받고 다니는 사람의 권리가 하늘인 곳이 우리 대학이라면, 우리 대학에 공정과 정의는 있는 것인가?
정작 서비스가 필요한 학생에게 눈길도 안 주면서 자기를 위한 서비스가 허술하다며 밥 더 달라 아우성치지 말아야겠다.
권리와 혜택을 바른 수혜자에게 돌려주자.
돈 위주의 얘기를 계속하고는 있지만, 대학은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은 아니다. 사실 내가 보고 있는 우리 대학 사람들은 돈(money)보다는 가치(value)를 추구하며 산다. 우리 대학 캠퍼스는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최고 지성의 향연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뛰어난 제자와 함께하는 즐거움과, 존경하는 스승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가 행복한 사람들이다.
대학이 졸업장을 파는 곳은 아니다.
졸업장은 학생이 낸 돈을 합산한 영수증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을 잘 마친 너를 믿는다는 든든한 신임장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