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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이 도전이다

SNU행정담론 ep#004

by 정현

우리나라에도 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세계 수준의 대학이 많아졌다. 그중 하나인 포항공대는 1986년에 개교한 대학이다. 대학가에서는 이 정도 시기에 개교한 대학들을 싸잡아 후발 대학이라고 한다. 주로 수도권에 위치한 이른바 메이저 대학들이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시하 새로운 쟁자의 출현 달갑지 않아 붙인 이름이라 생각된다. 개교부터 이미 유명세를 탔던 포항공대는, 그 시절 군 복무를 마치고 공대를 목표로 입시 준비를 하던 내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대학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서울에서 너무 멀리 있었고, 입학 수준 또한 포기할 수밖에 없이 높은 넘사벽이었다.


2004년의 어느 날, 한동안 잊고 지냈던 포항공대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낡은 사각형 콘크리트 건물의 우리 대학 도서관은 장서관리 자동화 시스템 도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때마침 포항공대 도서관인 청암학술기념관에서 RFID 장서관리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 견학을 위해 학교를 찾았다. 첫눈에 들어온 동그란 원형의 유리벽이 빙그레 펼쳐진 도서관 건물은 그야말로 쾌적한 놀이터였다. 이동 동선을 충분히 고려한 장서 배열과 집기 배치, 효율적 관리와 이용자 편의를 위한 첨단 자동화 시스템을 운영하는 그곳에서 나는 기가 죽었다. 우리 대학은 언제 이런 도서관을 하나 가지려나...


2019년 우리 대학 직원의 인사제도 개선방안을 가지고 고민하던 나는 포항공대를 다시 찾았다. 그해 세계 혁신대학 아시아 1위로 선정된 포항공대에는 나와 조그마한 인연을 가진 총장님이 재임하고 계셨는데, 자문을 구하기 위한 방문 요청에 쾌히 응해주시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마주해 주셨다. 총장님은 첫마디로, "포항공대는 그 자체가 도전입니다. 이 도전정신이 우리가 나아가는 원동력입니다" 하시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포항공대를 선택한 학생은 지방으로의 유학을 결심해야 합니다. 지금은 ktx로 소요시간이 확 줄었다지만, 여전히 차로는 4~5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입니다. 대도시 삶이 익숙한 학생들이 시내 소재의 상위권 대학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가족과 떨어진 멀고 먼 지방의 대학을 선택한다면, 입학부터가 학생들에겐 엄청난 도전임에 분명합니다. 입학부터가 도전이라면 졸업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도전을 헤쳐 나오게 될까요?"


"이제 개교 33주년이 되어가니 졸업생들은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동문들은 이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그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혁신을 이끄는 거센 동력이 되었습니다."


총장님은 '최근 학교 재정의 어려움과 공대 하락세 성향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지만, 가족품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불편한 지방도시에서의 홀로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우리 학생들의 도전정신이 오늘도 포항공대를 튼튼히 지키고 키워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 대학에는 더 큰 희망이 보인다'라는 말씀을 하시며 나와 눈을 마주치셨다. 대학 리더로서의 총장님의 확신에 찬 도전정신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직원 인사제도 개선이라는 자그마한 방문 목적을 잊고 말았다. 기가 다시 한번 죽는 순간이었다.


우리 대학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그들은 끝없는 도전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우리 대학의 학생은 3만 5천여 명이다. 포항공대는 우리 학생의 10분의 1 수준인 3천6백 명을 가지고도 2021 QS 세계대학 랭킹에 당당히 77위를 마크하며 나아가도 있다. 숫자로 대학의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인사제도 개선보다 더 시급한 우리 대학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었다.



최고의 대학이라 자부해왔던,

우리 대학은 과연 경쟁력 있는 대학인가?


만약 우리가 최고의 대학이라면,

우리 대학은 누구에게 최고의 대학인가?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나는, 재와 독선으로 타도의 대상이었던 그분이, 우리 대학에 주신 귀를 떠올면 가슴 한편이 짠하다. 그분은 포항공대를 설립한 포항제철의 실질적 창립자이기도 하다.


"한 세대의 생존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은 영원한 것...... 교육은 모든 것의 시원이 되며 이는 대학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학은 진리와 학문을 지녀야 하고, 영재가 배양되어야 하며, 대를 이러 위대한 상속자가 배출되어야만 합니다." (발췌: 총장에게 보내는 친서, 1970.3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발췌: 국민교육헌장, 1968.12월)


우리 대학은 이 일 계속할 수 있는 대학인가?

우리가 이 사명을 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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