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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령 Apr 19. 2022

산불


툭     


모든 것은 불씨의 마지막에서 시작되었다.

그 누구도 이 작은 불씨의 시작을 예상치 못했다.

찰랑거리는 물에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씨앗만한 불씨는 내달렸다.   

  

시작은 가볍고도 경쾌했다.

그 누구도 이 작은 불씨의 미래를 예상치 못했다.

한지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씨앗만한 불씨는 모든 것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건조한 마음에 심겨진 불씨는

산불처럼 피어나고 퍼져갔다.

시작은 잊혀지고 마지막은 모르는채.   

  

그래도 좋았다.

힘껏 내달리고 족적을 남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누구도 제제할 수 없었다.  

   

건조한 마음을 다 말려버린 뒤에야

불씨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갔다.  

   

씨앗은 조용히 잠을 청했지만

마음은 소란하다.



요즘 일교차가 크죠? 날씨의 변덕도 심하고요.

꽁꽁 얼어붙었던 모든 것들이 움츠렸던 어깨를 피느라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생한 만큼 아름답기에 역시 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겨우내 건조하게 말라버렸던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게 되었습니다.

그 씨앗은 메마른 마음에 그나마 남아있던 수분까지 다 흡수하며 몸집을 불렸지요.

제법 몸집이 커지자 땅을 가르고 올라와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곳곳에 족적을 남기고 이름을 새기고 자신을 봐달라고 소리치지요.  

   

저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듭니다.

제멋대로 날뛰니 제어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 한 구석에선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싶은 열망이 존재하고 있죠. 그래서 그냥 타오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뒀습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린 후에야 씨앗은 깊은 잠에 빠져들더군요.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소란한 봄입니다.   

       

건조특보 안전 문자를 보면서 이 글을 적었습니다. 제 마음을 돌아보니 산불같이 건조했더군요. 안전 문자의 주의가 무색하게 저는 한 발 앞서 말라버린 마음에 불씨를 심어버렸네요.


앞으로 이 불씨가 어디를 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긴 잠을 잘 수도, 더 큰 화력을 위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쪼록 이 불씨가 소란한 마음을 달래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소란함 없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 진이령이었습니다.     

                

https://www.porlery.com/cast/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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