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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Sep 05. 202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미국 영화 느낌 물씬 나는 미국 영화입니다. 미국 하면 역시 캐년 사이로 뻗은 먼지 쌓인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 떠오르니 말입니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는 마치 예전 서부극과 같은 분위기가 풍깁니다. 흙먼지, 추격, 총격전 등등 말이죠.


 텍사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미국 남부가 이런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듭니다. 날씨도 온화하고 모든 것이 풍성한 서부 해안가에서 내륙으로 점점 더 들어갈수록 녹색보다는 황색이 많아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태양은 점점 더 정수리 위쪽으로 올라가서 눈도 뜨기 힘들게 만들겠죠.



 몇 달 전 보았던 델마와 루이스도 길을 따라 펼쳐지는 로드무비인 만큼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델마와 루이스의 내륙이지만 서부에 가까운 유타에서 촬영되었다고 하고, 이 영화는 남부 텍사스에서 많은 부분이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길이 아닌 사막 위에서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나, 영어를 하지 못하는 멕시코 마약상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남부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이지 않을까요. 실제 걸어서 멕시코 국경을 넘나들기도 하니 말입니다.


 영화를 곱씹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으면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지?'로 빠지기 딱 좋은 조금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요즘은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다양한 특수효과로 사람들의 눈을 홀리고 있지만, 아바타가 개봉되기 이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볼거리가 풍성한 화려한 영화는 내용이나 메시지가 조금 약하고, 볼거리가 조금 빠진 영화들은 대신 좀 탄탄하게 만들어진 경향이 있었죠. 2009년의 아바타 이후에는 인셉션 등과 같이 각종 특수효과가 잔뜩 들어가 있으면서도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만 보더라도 2008년에 처음 개봉한 아이언맨 1에서는 한 명의 히어로와 한 명의 빌런 구도였고, 소니의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1대 1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2012년도 개봉한 어벤저스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여러 명의 히어로와 여러 명의 악당들이 복잡하게 등장하죠. 예전에는 히어로 한 명이 종횡무진하는 것만 보여주어도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이제 그런 CG에 익숙해져 버린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복잡한 구성과 탄탄한 스토리가 함께 어우러져야 했던 것 아닐까요.


 다시 이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다양한 특수효과보다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관객들의 주의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일종의 제약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너무 넓게 가져가지 않고, 등장인물을 너무 많이 두지 않는 등의 말이죠. 물론 이 영화는 길을 따라 펼쳐지는 추격 로드무비이다 보니 공간을 제한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등장인물을 포스터에 나온 세명의 쫓고 쫓기는 사람들로 한정을 했죠. 이것보다 더 극적이었던 방법은 '소리'를 통제하는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서스펜스가 쭈욱 올라가는 긴장감 높은 장면에서, 다른 영화에서라면 낮게 깔리는 현악이나 타악의 배경음악이 있었을 것 같은 부분에서, 과도할 정도로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면만으로, 등장인물만으로 그 긴장을 전달하려고 한 것 아닐까요.


 현대의 서부극이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보안관 배지를 달고 말을 타고 다니면서 총격전을 펼치는 서부극은 이제 시대극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현대가 배경인 서부극은 어떤 느낌일까요. 서부극이라면 누아르 느낌이 실려있으면서, 홍콩영화 같은 동양식 누아르 느낌은 아니어야 하고, 그렇다고 대부와 같은 동부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누아르 느낌도 아닌 그 특유의 '흙먼지'가 끼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옛날 말발굽에서 날리던 그 흙먼지 느낌이, 자동차 바퀴를 통해서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영화 보는 내내 시계 한번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던 영화지만, 사실 제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설명들을 찾아보면 '노인들이 살기 힘들 정도로 위험한 나라'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아마 다른 제목을 쓸 수는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 제목을 인기를 끌 수 있도록 바꾸는 경우도 많은데, 이 영화는 아마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었는지, 영어를 직역한 제목을 그대로 달고 나왔습니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는 않네요. 그냥 워낙 이상하게 제목을 바꾸어놓은 영화가 많다 보니, 이 영화 제목은 왜 안 바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지식 없이 제목만 보고 영화를 골랐다가는 조금 놀랄만한 영화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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