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ma and Louise
델마와 루이스. 여기저기서 이름은 많이 들어본 영화였습니다. 우연찮게 어느덧 30년이나 되어버린 영화를 열어보는 기회가 닿았습니다.
코로나 19로 영화산업이 사실상 강타를 맞기는 했지만, 그 여파로 집에서 이런저런 영화를 스트리밍 해서 보는 취미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월 1~2차례는 주말이나 일찍 퇴근한 저녁에 극장에 들러 좋아하는 시리즈나, 관심 있는 배우가 나오는 개봉작을 챙겨보았었는데, 그게 뚝 끊긴 지 벌써 1년도 훌쩍 지났네요. 팬데믹이 계속되다 보니 제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아니면 수익 문제로 풀지를 않고 있는지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최신작은 그렇게 끌리는 것이 없다 보니 이렇게 예전 영화에 다시금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델마와 루이스가 겪는, 그녀들이 벌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연찮게 휴가지에서 당한, 저지른 사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시간의 흐름대로, 자동차 바퀴가 닿는 대로 흘러가는 그런 로드무비입니다.
잠깐 옆으로 새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미국, 특히 도시가 아닌 남부나 서부를 다루는 영화는 몇십 년이 지났어도 사실 크게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그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예전에 미국에 잠시 지낼 때 Back to the Future(1985) 개봉 30주년이라고 기념 상영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널찍한 주차장을 가진 빨간 간판과 빨간 의자의 햄버거 가게가 있는 분위기가 지금과 너무 비슷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도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헤어스타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뭐 그게 크게 지금과 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
비단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내용도 지금의 시대와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제 시선에서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탈출구 없는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대립구도를 남녀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힘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의 관계로 보면 어떨까요. 사회적으로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들, 그리고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들, 지금도 이렇게 나뉘어 있죠. 오죽하면 우리 사회에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정식 단어로 등재되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당시의 여성인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의 저는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나타나는 갑질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칩니다.
30년 전, 1991년도에 저는 뭘 하고 있었는지 잠시 떠올려 봅니다.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이 영화를 볼 일은 없었겠죠. 초등학생 저에게 개봉에 맞춰보는 영화는 '영구와 땡칠이', '우뢰매' 이 정도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사회는 어땠을까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이나 극동아시아의 대한민국이나 이런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진 로드무비인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을 경우, 제한된 공간에서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일반적인 연출일 수도 있고, 자칫 배경을 넓게 가져가면 주의가 산만해지기도 하는데, 액셀레이터를 밟고 운전대 방향을 틀수로 거침없어지는 두 여자의 여행을 보면서 무언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떠나서라도 이 영화는 재미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로 나름 괜찮은, 메시지 있는 내용이 일단 아주 좋고, 미국의 대자연은 함께 오픈카 뒷자리에 앉아서 드라이브하는 기분도 아주 상쾌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대배우 브래드 피트의 옛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가 아주 솔솔 합니다. 지금의 배우 '공유'씨는 군 복무 이후 아주 차분하고 멋지고 무게감 있는 배역 위주로 - 도깨비라거나 부산행이라거나 - 믿음직스러운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신인시절에는 귀엽고 까불까불 한 역할도 많이 했었죠. 김선아 주연의 'S다이어리'라는 영화에서 욕망 넘치는 철없는 연하의 남자 친구로 나오던 공유, 그 느낌의 브래드 피트를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참에 다음에는 브래드 피트의 예전 필모그래피를 찾아봐야겠네요.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다 뭐다 이야기도 있는 것 같은데, 꼭 남녀 성대결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 당시에 억압을 가하던 쪽, 위해를 가하던 쪽이 남성이었을 뿐이고, 권력의 차이에 의한 역할과 입장의 차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든 있어왔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문제이니까요.
그땐 그랬는데,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