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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Mar 21. 2022

밖에서 먹으려고 '무쇠 팬'을 샀습니다.

집에서는 무겁고 기름 많이 튀니까

 수년 전에 친구 따라 캠핑을 간 적이 있습니다. 텐트랑 타프를 피칭하고, 이것저것 정리해서 사이트를 구축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남자 세명에게 주어진 '할 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야외에 나오면 늘 그렇겠지만 첫날 저녁에 이런저런 고기를 구워서 한 잔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서 라면 끓여먹고, 점심에는 근처에 가서 횟감을 떠다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낮잠 한 숨 자고 이런 대화를 했었죠?


 "저녁에는 뭐 먹어? 또 불 피워서 고기 구워?"


 "누가 캠핑 와서 맨날 고기만 먹어, 초보 같이. 저녁때는 닭이랑 야채랑 튀김 해 먹을 거야."


 캠핑 음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숯불 바비큐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던 저에게는 꽤 임팩트 있는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번거롭게 준비할 것 없이 큼지막한 비닐봉지에 튀김가루랑 밑간 재료를 넉넉히 넣은 다음, 각종 튀길 거리들을 넣고 흔들어서 미리 끓여둔 기름에 툭툭 넣었습니다. 전날 저녁에는 불 앞에 둘러 않아 자기가 먹고 싶은 고기를 자기가 익히고 싶은 만큼 구워 먹었었는데, 이날 저녁에는 끓고 있는 기름통 앞에 둘러앉아 자기가 먹고 싶은 재료들을 튀겨 먹었습니다. 염지를 했던 고기도 아니고, 대단한 향신료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뜨거운 기름에 갓 튀겨내어서 바삭한 튀김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부터 제 머릿속에서 '야외 = 바비큐'의 공식이 깨졌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꼭 캠핑이 아니라고 해도 야외에서 직접 식사를 준비할 때면 무조건 숯, 불판, 고기, 야채, 쌈장 등등을 준비하는 것이 코스였는데, 이때부터 뭔가 '메뉴'와 '요리'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작년에 자동차를 바꾸고, 시골로 이사를 오고, 밖에 나가서 잠도 자고 음식도 해먹을 만한 상황이 되니 '그럼 뭘, 어떻게 해 먹어야 하지?' 고민이 들더군요. 처음 몇 번은 집에서 그냥 쓰고 있는 냄비나 팬을 들고나가서 부탄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이런저런 밀 키트를 데워 먹었습니다. 조금씩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어 지더군요.


 그러다가 문득 Cast Iron Skillet - 우리말로 하면 무쇠 팬, 주물팬, 주철 팬, 다양한 이름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 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꺼운 팬이니 만큼 온도도 오래 유지해주고, 집에서는 그동안 무거워서 별로 쓸 생각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불멍을 하겠다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자니, 그 불을 이용해서 뭔가 좀 해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집에 있는 조리도구들은 새까맣게 타버릴 것 같아서 불 위에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해외 요리 유튜버들을 보다 보니 Cast Iron은 숯불이나 직화 위에 바로 올려도 괜찮더군요. 이것저것 구워 먹기도 좋고, 높이도 조금 있으니 튀김이나 지짐도 가능할 것 같고, 한 번 눈에 들기 시작하니 저도 모르게 계속 검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이서 쓰기 적당한 사이즈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쓰는 것이라면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캠핑 짐을 꾸리는 것은 무게와 부피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무조건 큰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죠. 게다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 조리도구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보통 Lodge(롯지)라는 브랜드가 많이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브랜드가 그 물건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대변해주기는 하지만 저는 별로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어서, 특정 브랜트에 한정하지 않고 편견 없이 적당히 팔리는 적당한 가격의 물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이벤트로 가입했던 SK 우주 패스가 아직 살아있을 때였는데, 우주 패스에 가입되어 있으면 11번가 아마존 쇼핑 시에 배송비도 무료이고 5천 원 할인 쿠폰도 쓸 수 있었습니다.



 11번가 아마존에서 Cast Iron 검색하다 보니 적당한 8인치(20cm) 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격도  오천 원이 안되어서, 쿠폰을 적용하고 나니 만원도  하지 않더군요. 물론 배송은 제법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해외배송이다 보니 오늘 주문한다고 내일이나 모레 도착하는 것은 아니죠.


 금액을 결제하고 Cast Iron 관리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무쇠 종류를 쓰지 않고 있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거든요. 먼저, 무거워서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손목도 아프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 쓰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 보통의 코팅 조리도구들에 비해서 관리가 조금 복잡합니다. 시즈닝도 해주어야 하고, 아무렇게나 막 굴리면 녹슬거나 망가지고 그러니까요. 이번에 산 8인치 Skillet은 아내가 쓸 물건이 아니고 제가 밖에서 쓸 것이기 때문에 첫 번째 이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관리인데,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 보니 요즘 나오는 것들은 Pre-Seasoned, 사전에 시즈닝이 되어 있어서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기분이라도 내볼 요양으로 물건이 배송된 다음 집에서 오일을 펴 발라서 연기를 내면서 몇 차례 시즈닝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손잡이가 생각보다 많이 뜨겁더군요. 매번 장갑을 끼거나, 행주를 찾아서 감는 것도 귀찮을 것 같아서 손잡이 작업을 해두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조금 찾다 보니 '마끈'을 구매해서 예쁘게 감아서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안 그래도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중인데 팬 손잡이 감는데만 쓰고 말건대 마끈을 또 사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고 해서 집에 비슷하게 쓸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퀼트니 자수니 할 때 모아두었던 자투리 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 쓰는 무난한 천 한 조각을 두꺼운 실처럼 길게 잘라서 팬 손잡이에 감아보았습니다. 공장에서 막 생산되어 나온 제품처럼 깔끔하지는 않지만 제가 캠핑장에서 굴리면서 쓰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마끈 하나 구매하는데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궁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여기에만 쓰고 안쓸 물건을 사고 싶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날은 밖에 나가기 너무 귀찮았고, 그냥 이 작업을 빨리 해버리고 싶었던 게 컸죠.


 그렇게 준비된 팬을 가지고 몇 번의 차박을 다녀왔습니다. 삼겹살도 구워 먹고, 감바스 알 아히요와 파스타도 해 먹었습니다. 보통 Cast Iron이 완전히 길들기 전까지는 양념 있는 음식보다는 기름기 많은 요리를 하는 게 좋다고 해서 당분간은 고기나 튀김요리 정도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냄비 같은 다른 조리도구를 안 챙겨가서 어쩌다 보니 떡볶이도 하고, 라면도 끓여먹었네요. 아무래도 지름이 조금 작다 보니 라면은 한 개씩 끓여야 했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무쇠 팬으로 요리를 하면 더 맛있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인 글이나 영상도 많았고요. 실제로 제가 밖에서 막상 써 보니 정말 더 맛있더군요. 여기에 구운 삼겹살이 집에서 전기 불판에 구운 것보다 맛있었습니다. 파스타도 그렇고요. 물론 여러 전문가분들께서 설명해주신 그런 이유들도 있겠지만, 저는 밖에서 튈 걱정 없이 '막' 요리할 수 있어서 그런 것도 한 몫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는 음식 좀 하고 가스레인지 주변에 저렇게 난리로 만들어 놓으면 실컷 요리해주고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듣기 때문에 재료도 충분히 쓰지 않고 항상 뭔가 절제된 상태로 음식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밖에서는 이런 것들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튀기고 지지는 요리도 좀 해볼까 생각하고 있고요.


 장작불이나 숯불에 바로 팬을 올리는 그 행위 자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신 분들은 이런 조리도구도 없이 바로 숯이나 직화 위에 재료를 올려버리시는 분들도 있지만, 제가 그렇게 요리를 하면 아마 아내가 먹지 않을 것 같네요. 불 위에 바로 올린 팬 위에서 지글지글 터져 나오는 기름방울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 무겁지만 들고 다닐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꽤 묵직하긴 합니다. 더 큰 것을 샀으면 어쩌면 잘 안 들고 다닐 수도 있었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죠.


 캠핑 중에는 기름과 키친타월로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세척 후 한 두 차례 시즈닝을 해서 다음번 캠핑에 바로 들고 갈 수 있도록 캠핑 짐에 넣어서 정리를 해 두고 있습니다. 이 팬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군침이 꿀떡 넘어갑니다. 이번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이 팬이랑 고기 몇 점, 아니면 식용유랑 돈까쓰라도 들고 가까운 노지에 나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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