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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n 20. 2021

잠시 멈춤, 세계여행

제목처럼 잠시 멈춰갈 만한 여유는 보이지 않았던 조금 빡빡한 여행 이야기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가 회사를 정리하고 2년간의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적은 글입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글이 은퇴한 60세 아저씨가 혼자 2년간 다녀오신 세계여행 이야기였었는데, 책의 구성, 디자인, 내러티브, 각종 정보 등 많은 것들이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이 책은 산뜻한 표지와 감각 있는 폰트로 무장하고 있는데 다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은 좀 '과한' 여운이 남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60대 아저씨의 투박한 글이 더 좋았나 봅니다. 



 이 책 속의 여행은 제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세계여행의 템포보다 너무 빠르고, 가득 차있습니다. 80일 안에 끝내야 하는 세계여행도 아닌데, 너무 계획적입니다. 저자 부부는 아니라고 하는데 저는 '어떻게 이렇게 2년을 다닐 수 있지?'라는 갑갑함도 중간중간 몰려옵니다. 발길 닿는 대로, 터지는 문제들을 그 상황에 맞추어 해결해 나가는 - 무려 여권을 세 번이나 잃어버리시고, 휴대폰과 노트북 분실은 다반사인 - 60대 철부지 시니어의 여행이 더욱 여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방금 전에 저 책을 읽었기 때문에 드는 착각이겠지만 말이죠.


 제목은 '잠시 멈춤'인데, 일정이나 책 속에서 보이는 이야기들에서 멈춤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세계를 둘러보기 위한 세계여행이라기보다 '세계여행 자체를 했다고 하기 위한' 세계여행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삶의 경험과 폭이 젊은 분들의 여행기가 그런 경향이 좀 있긴 하지만 말이죠. 그래도 이 책의 강점은 그 '빡빡함'입니다. 론리플래닛과 같은 여행정보 서적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본인들의 일정별 예산, 세부 동선, 중간중간 여행정보까지. 마치 여행 다녀온 ㅇㅇ맘 님의 블로그를 보는 것과 같이 어떻게든 좋은 정보를 공유해주려고 노력하신 흔적이 곳곳에 많이 묻어납니다.


 그렇지만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정작 중요한 정보들을 찾아볼 수 없어서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면이 한정되다 보니, 모든 정보를 포함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탄 여행이 특히 아쉬웠습니다. '다들 부탄이 좋다길래 우리도 꼭 가보기로 했다. 가서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일정이 꼬였다. 그래도 참 좋았다' 정도의 간략한 내용만 몇 페이지로 끝나버렸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곳이라고 해놓고 '왜?'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예고편은 엄청났는데, 예고편에 나온 장면이 하이라이트여서 정작 영화관에서는 졸다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여행, 떠남, 체험'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젊은 여행자이시다 보니, 각 지역과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충분치 못한 것도 좀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 책 하나로 세계여행 간접경험을 끝내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제가 하는 여행과 스타일이 꽤 다르다 보니 책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짧게 떠나는 며칠짜리 여행이라고 하더라도,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시기부터 관련된 서적이나 방송, 영상들을 찾아보고 인사말 몇 자락이라도 미리 알아두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지리나 역사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적어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거리라도 챙기곤 하거든요. 물론 짐도 많은데 뭐 이런 것까지 챙기냐고 타박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저도 아마 이렇게 갑자기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충분한 준비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 이분들처럼 남들이 좋다고 하는 여행지 위주로, 최대한의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경비를 최대한 절약할 수 수 있도록 일정을 짜겠죠.


 앞서 읽었던 60대 시니어 여행기에 비해서는 여행 전반을 살펴보기가 좀 어렵기는 합니다. 여행 순서별로, 지역별로 정리가 되어있지만, 각 에피소드가 인과관계에 맞게 연결된다기보다는 일기장을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보는 느낌이거든요. 아무래도 한 권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편집 과정에서 사라진 부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한 번에 쭉 읽기보다는, 회사 개인 자리 한편에 꽂아두고 있다가, 하루에 두어 페이지 정도 점심시간에 잠시 머리 식히면서 읽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깃거리가 충분하다면, 이렇게 두꺼운 500페이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굳이 한 권에 담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전 한비야 님의 책처럼 여러 권으로 좀 더 이야기를 풀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21. "우리가 하고 싶은 거잖아." 남편의 한마디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25. "그래, 돈은 다시 모으면 되지만 시간은 돌릴 수 없으니까."


51. 하지만 나는 꼭 부탄을 여행하고 싶었다. 우리의 로망인 세계여행을 하는데 로망의 여행지를 빼놓을 수는 없잖아?


67. "삐끼가 귀찮게 굴면 그냥 '니들도 먹고살아야지'라고 생각해."


123. "그럼 서핑은 다음에 해. 다음에도 기회가 있잖아. 이 짧은 시간에 그 많은 것을 다 할 수는 없어. 남겨두고 떠나야 다음에 다시 오지."


141. 이 정신없는 와중에 탁발이 시작되었고 주변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중략) 몇몇 여행자의 무례한 행동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중략) 나는 멀리서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144. 가끔씩 여행길에서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라오스 같은 개발도상국을 여행할 때는 유난히 더.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에게는 더 나은 삶을 누릴 권리가 있으니까.


153. 여행을 시작한 지 4개월, 어쩌면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보다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남편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164. 국립중앙의료원 해외여행 클리닉 이용하기. 전화 예약이 우선이다. 생각보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 미리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221. 오래전부터 여행을 좋아했고, 나름 많은 여행을 했지만 내가 이곳에 서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242.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더 젊을 때 알았더라면 더 많은 여행을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을 거야."


266. "그 부족함이 있어서 너희가 작은 것에도 더 감사하고 만족하게 되는 거야."


284. 1950년대의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한 독립국가이자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강국이었고, 그들은 기꺼이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를 도와주었다. "이제는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할아버지가 항상 뿌듯해해요."


312. 그런데 이 아름다운 도시 어디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지난밤과 같은 감흥을 받지 못했다.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사람들 틈에서 나도 그들을 따라 카메라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327. "가이드를 하면서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다들 얼마나 바쁜지 보통 일주일이면 도시 서너 개는 가더라고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었어요."


356. 매일 아침 9시 다이빙 센터로 출근하고, 택시 아저씨에게 목적지로 가는 빠른 길을 안내하고, 과일 가게 아저씨가 건네는 단골손님 서비스에 싱글벙글 즐거운 하루. 매끼 뭘 먹을까 고민하고, 밀린 일기와 가계부를 정리하다, 쌓여있는 빨래를 못 본 척 낮잠을 즐기는 남편이 조금 얄미운 하루.


381. "그에게 나는 필요한 직원이었지, 좋아하는 직원은 아니었던 거죠." (중략) "여보세요,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야, 천사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고."


382. 문득 회사를 그만두던 그때가 생각났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모르는 척했지만 부담스럽다는 말속에 가시처럼 숨어있는 '팔자 좋다'는 말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나는 둔하지 않았다.


422.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관련된 인물이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으니까.


431. 마음속에 담아두지도 않고,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지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와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442. "겨우 날씨 때문에 우울하면 안 돼요. 나쁜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463. 세계여행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모든 도시에 들를 수도, 사람들이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든 것을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략) "아니, 남편 말대로 푸노까지 들렀더라면 좀 피곤했을 것 같아. 그때는 다른 사람들이 다 간다기에 안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니까." "그랬던 거야? 남들이 간다고 꼭 갈 필요는 없잖아. 우리 그러지 말자."


484. 아이러니하지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새삼 우리는 우리나라의 매력을 깨달았다.


489. "취했다 싶으면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벤치에 누웠다가 가세요. 술은 즐겁게 마셔야죠."


503. 빼고, 빼고, 또 빼고. 줄이기의 반복 끝에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배낭이 완성되었다.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챙겨 넣었음에도 가뿐한 배낭의 무게에 괜히 뿌듯했다. 


505. 오히려 가벼워진 배낭이 산속에서 나흘을 더욱 수월하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524. 건강과 행복과 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돈이나 명예가 우리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노력하는 현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줄 거라는 것.


537. 지난 2년의 긴 떠돌이 생활은 우리에게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려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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