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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l 18. 2021

쫄보의 여행

여대생의 혼자 떠난남미 여행+ a

 2017년에 발간된 휴학한 여대생의 8개월짜리 여행기입니다. 대부분 남미 이야기이고 조금 다른 나라가 끼어있는 구성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49일 동안 62개 도시를 정복(?) 했다고 표지에 적혀있는데, 말로만 들어서는 엄청나게 바쁜 일정입니다. 한 도시에 며칠 제대로 있을 틈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책도 꾸준하게 여행과 생각의 흐름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인터넷 포스팅 중 괜찮은 콘텐츠를 엮어 놓은 것처럼 큰 맥락 없이 이런저런 글들이 묶여있습니다. 책도 조금 바빠 보이기는 합니다.


 코로나19 판데믹으로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요즘, 주말이면 부쩍 여행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간접경험으로나마 지구 반대편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요즘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여행을 했던 국내 아마추어 여행작가들의 글을 주욱 보다 보니,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천편일률적인 여행과 감상에 조금의 피로함이 느껴지긴 합니다.


 다 거기가 거기고, 거기서 하는 이야기들도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죠. 이 책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워낙 남미, 인도, 아프리카 여행을 담은 아마추어 작가들의 책을 연달아 보다 보니 좀 그런 느낌입니다. 그 나라의 역사나 사회, 문화 같은 알맹이 콘텐츠가 없이, 그냥 먼저 지나간 다른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따라간 여행에서 똑같은걸 보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겠죠.


 마추픽추가 별게 아닐 수 있습니다. 산 위에 그 경치가 뭐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거기까지 힘들게 올라간 기억이 더 남겠죠. 마추픽추가 가진 콘텐츠를 모른다면 말이죠. 그 나라, 그 도시, 그 장소,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천 년의 맥락을 모르고 그곳에 서 있다면, 결국 거기에 도착하려 했던 내 노력, 즉 '내 콘텐츠'만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겠죠. 


 예전 영국에서 공부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대영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처음에 갔을 때, 어마어마한 전시물들에 압도되면서, '그런데, 여기서 내가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망치처럼 뒤통수를 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런던에 들릴 틈이 날 때면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주 들렸었는데, 매번 들리기 전에 도서관에서 전시물과 작가들에 대한 책을 먼저 찾아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뭔가 어디 오지에서 엄청 하기 힘든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지하철에서부터 깨알 같은 글씨의 조그마한 페이퍼백 책을 탐독하다가, 작품이나 전시물 앞에서 서서 그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이런저런 특징들을 뜯어보면서, 저 물건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시간을 되짚어 보는 경험은 어쩌면 제가 했던 여행의 방식 중에 가장 그 지역 대하는 가장 성의 있는 방식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미 특정 국가를 방문한 이유가 '환율이 좋아서'라고 한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해당 국가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달러 가치가 치솟는 것이 그 지역의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말해주는 아주 극명한 지표인데, 너무 사회적인 이해나 배려 없는 이유이고 설명이지 않을까요. '1달러짜리 스페인어 과외'라고만 '가성비'를 논하기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책 속에서 볼 수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이 부분 때문이었을까요, 책 전반에 걸쳐 저자인 여행자와 대상인 여행지의 관계가 '너는 너, 나는 나'로 비추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여행책을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비슷하게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당분간 '남미'를 여행으로 다녀온 분들의 글을 좀 멀리해야 할까요.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어디 어디 빙하 트래킹, 이런 것은 이제 좀 식상한 기분이 듭니다. 힘들여 도착해서, 경치 잘 보고, 사진 잘 찍고, 몇 장 보여주고, 책마다 다 똑같습니다. '진짜 이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게 정말 다인지' 직접 확인해볼 요양으로라도 한번 가보긴 해야 할까요. 그곳이 가진 콘텐츠는 정녕 없는 것일까요?


 비슷한 책들이 도서관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보니, 문화적 콘텐츠가 없는 여행기는 점점 더 몰입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팬시한 그림이나 사진이나, 진귀한 경험은 없지만 그 나라에 대한 콘텐츠는 가득 차서 넘치던 어린 시절 즐겨보던 '먼 나라 이웃나라'가 보고 싶네요.


 20대 초반 여대생의 글이어서 그런지, 본인의 작은 경험이라도 이런저런 부분을 공유하고자 정보적인 부분도 중간중간 정리를 조금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삶의 경험과 배움의 깊이가 크지 않다 보니 '여행'에 집중하고 있고 그 '나라/도시'에 대한 문화, 역사적인 내용은 별로 없고요. '여기가 어떤 곳이다'는 내용보다는 '내가 여기에 왔다'는 방식으로 서술된 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젊은 감각의 책인 부분은 좋습니다. 출판사에서 천편일률적인 편집으로 뽑아낸 책 같지는 않고, 작가가 본인 다이어리 꾸미듯, 인스타그램 업로드하듯이 신경을 쓴 부분이 제법 보입니다. 가독성을 저해하는 이상한 간지도 없고, 사진에 친절한 설명은 없지만 맥락을 저해하는 아리송한 사진을 억지로 채워 넣지 않아 글을 읽는데 방해되는 요소도 별로 없습니다. 그나저나 언제부턴가 핑크 표지가가 대세인가 봅니다. 요새 읽은 책 중에 거의 매번 핑크가 하나씩 끼어있네요.


 TV 드라마로 치자면, 이 책은 '학교'시리즈 같은 하이틴 드라마라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여행지에 대한 예습이나 연구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다닌 여행이다 보니 어디를 더 방문했다 하더라도 책의 내용이 더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책과 이 책에서 조금 다른 것은 본인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봤었던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기에서는 아버지의 시각에서 두 아들의 성장기를 담고 있었는데, 3인칭 시점의 성장드라마와 1인칭 시점의 성장드라마가 또 나름 다른 부분이 있네요.



 책을 덮고 나니, 표지에 거창하게 적어놓은 숫자가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나 홀로' '249일' 유쾌한 '18개국' '62개 도시' '정복기'. 이 여행을 하고 저 많은 곳을 정말 정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출판사에서 적어준 카피일까요. 249일, 여행으로 치면 그렇게 길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짧지도 않은데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책을 분명 다 읽었는데 "그래서?"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계속 남는 글이었습니다.




21. 미리 예약을 했다가는 일정의 노예가 될지도 몰라요. '여기 아니면 다른 데 가면 되지!',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면 조바심이 사라진답니다.


27. 주로 버릴 만한 옷을 가져가서 미련 없이 버렸죠.


47. 등산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페루에서 이렇게 높은 산을 오르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59. 그때마다 '괜찮아. 더 이상 도둑맞을 돈이 없으니 마음이라도 편하잖아'라고 수백 번, 수천 번 읊조리며 화를 가라앉히는 것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68. 마추픽추의 모습은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광판에서 봤던, 교과서에 나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95.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김훈, 자전거 여행)


119. 떨어지는 와중에도 인생 사진은 건져야 한다는 간절함에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자유를 만끽하는 척, 억지 미소를 지었다.


141. 베네수엘라에선 최악의 경제 상황 때문에 달러 가치가 무한대로 치솟았고 그 결과,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의 가치는 미친 듯이 폭락했다.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겐 물가 천국의 여행지가 된 것이다. 한 시간에 1달러밖에 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 과외비에 '어머, 여긴 반드시 가야만 해!'를 외치며 베네수엘라에 오게 되었다.


148. 소매치기와 강도가 우글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금의 경계와 긴장도 하지 않고 고가로 거래되는 휴대폰을 테라스에 당당하게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는 행동 자체가 범죄의 위험에 노출될 만했다.


184. 동남아시아보다 콜롬비아가 PADI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취득 비용이 훨씬 저렴해요.


187. 브랜드 로고가 보이지 않는 옷, 화려하지 않은 옷, 낡은 신발이나 슬리퍼 등 자신을 최대한 가난하게 꾸미는 것이 좋아요.


193.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인 페루의 쿠스코와 리마, 볼리비아의 수크레에서 장기 체류를 하며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요.


200. '사막에서 살아남기'의 애독자였던 내가 만화책에서 본 사하라 사막을 직접 가게 될 줄은.


259. 여행의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그것은 여행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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