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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첫 다이빙, 오픈워터

언젠가 해볼까 미뤄두었던 일을 저지르다

by jim

코로나19로 제대로 휴가 한 번,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최소한의 활동반경 내에서 '필수적'인 삶만 영위해 온지도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어갑니다. 먹고살기 위해 장을 보는 것, 그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을 제외하고서는 집을 제대로 벗어나서 지낸 추억이 사실상 없는 것 같습니다. 예전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10년 전 사진첩에서 막 스쿠바 다이빙을 시작했던 사진을 보면서,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정리하지 못했던 그간의 다이빙 기록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첫 다이빙은 아내와 연애하던 2007년 겨울, 같이 떠났던 첫 해외여행이었던 필리핀 세부 여행에서 했던 체험 다이빙이었습니다. 패키지여행을 가본 분들은 다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가이드가 형형색색의 산호와 물고기가 가득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추천하는 1~2백 불짜리 선택 옵션 관광, 그것이 저와 아내의 첫 다이빙이었습니다. 사진을 잘 찍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벌써 근 15년 전이라 그런지 어떤 앨범에 들어있는지 사진을 잘 못 찾겠네요. 물론 가이드나 강사에 끌려(?) 다니는 것뿐이었지만, 머리 위로 수면이 차올랐는데도 호흡을 하면서 그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바닷속을 둘러보는 것은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아내와 '언젠가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끌려다니지 않는(?) 다이빙을 해보자'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사무실에서 근무하던지 저는 동료들과 휴가 일정을 조율할 때면, 북적거리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학생 자녀들이 있는 집들이 방학기간을 맞춰야 하기도 하기 때문에 저는 보통 성수기는 양보하고 9월, 늦으면 10월에 휴가를 가곤 했습니다. 운 좋게 4~5일 정도, 주말 끼어 일주일 조금 안 되는 기간을 쉴 수 있었고, 그해애 운 좋게도 항공 마일리지도 두 사람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정도가 쌓여서 부담 없이 해외여행을 한번 가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내가 원하는 곳을 원하는 일정에 가기는 쉽지 않죠. 가용 일정에 갈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사이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이판, 왠지 어릴 적 어르신들께서 어디 좋은 데 갔다 왔다고 하시면 '하와이', '홍콩' 다음으로 많이 말씀하셨던 지명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가까운 동남아, 학생 때 경험 삼아 다녀오는 유럽 배낭여행, 업무나 연수로 다녀온 몇 개 국가 외에는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사실 사이판이 어디 있는 줄도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정보를 찾다 보니 괌 못 미쳐서 있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 있는 섬이더군요.


장소를 정한 다음에야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휴양지 섬에서 해양스포츠 말고는 별로 할 것이 없어 보이더군요. 도시와 같이 각종 문화를 관광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번화한 쇼핑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러던 중 막연하게 '언젠가 해보자'라고 했던 '스쿠바 다이빙'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내와 정보를 검색하고, 구글을 통해서 현지인이나 한인을 가리지 않고 다이빙 샵을 검색했습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갖가지 장비가 필요한 스쿠바 다이빙이 엄청나게 비싼 취미활동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장비 렌털, 교육, 숙박 등이 다 포함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픈워터 자격증' 코스가 300백 불 내외였기 때문이죠. 하루에 10만 원 정도 예산에 이게 다 포함이라니, 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같은 샵을 찾아보니 10년이 지났는데도 450불 정도이면 그렇게 많이 오르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희가 오픈워터 교육을 예약했던 곳은 SDA, 사이판 다이브 아카데미라는 곳이었습니다. 새벽 도착임에도 불구하고 픽업도 나와주시고, 식사도 맛있었고, 사장님께서 아주 친절하셨습니다. 당시에 나중에 다시 또 찾아오겠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아직 삶이 사이판을 다시 가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는 탓인지, 아직 재방문을 못하고 있습니다.


샵에 한국 강사분이 안 계셔서, 일본인 강사분께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속으로 '생을 걸고 하는, 안전이 필수적인 활동인데 일본인에게 영어로 배우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불안이 있었으나, '어차피 물속에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믿고 차근차근 배웠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사소한 절차 하나도 꼼꼼히 배우려고 노력했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밤에 교재를 통해서 다시 한번 복습하고 하는 날을 며칠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한국어로 배운 것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홈페이지를 보니 지금도 그 강사님께서 계신 것으로 보이는데, 사소한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제대로 자세가 나올 때까지 제한수역(수영장) 교육을 몇 시간씩 했고, 아내는 필기시험을 떨어져서 재시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렴풋하게 기억을 되짚어보면, 아내가 중성부력 유지를 잘 못해서 이대로 오픈워터 자격을 줄 수 없다고 해서 개방수역(오픈워터) 교육을 추가로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교육을 마치고 저녁마다 사장님께서 이런저런 맛집을 데려가 주셨던 것도 무척 따뜻한 기억입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갓 잡은 생 참치회', 오랜만에 한국 사람과 한잔 해서 좋다고 하시면서 따라주신 '막걸리 한 잔'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점심시간에 샵에서 코코넛 과육을 썰어주시면서 '와사비 찍어먹으면 생선회 같다'고 하신 것은 아직도 코코넛을 접할 기회가 있으면 종종 해 먹는 간식입니다.


Saipan Dive Academy T-Shirt


그러고 보니 그때 교육과 펀 다이빙을 마치고 떠나면서 선물로 주셨던 티셔츠도 아직 집에서 잘 입고 있네요. 바닷가에서도 많이 입었었는데, 소재가 좋아서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사진이 많이 없습니다. 신혼부부의 빡빡한 생활에 빠듯한 예산으로 다녀온 여행이어서 추가 요금을 내고 사진 촬영 패키지를 선택하지 않았거든요. 대신에 그때 쓰던 카메라에, 워터파크에서 쓰던 비닐 하우징을 챙겨갔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지했는지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입니다. 교육을 마치고 첫 번째 펀 다이빙에서 그 비닐 하우징에 들어있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하우징은 하우징 구실을 못했고, 카메라는 저세상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이후 다이빙 여행 시에는 고프로를 장만해서 추억들을 많이 기록했는데, 당시에는 제목 헤드라인에 올린 아내와 일본인 강사의 사진이 유일한 사진이 되었습니다.


Lau Lau Beach Access, Saipan

자격증을 취득하고 첫 다이빙의 기억은 아직도 새록새록합니다. 이글레이, 상어 등을 보고 우리 보고 첫 다이빙부터 '운이 좋다'로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강사, 마스터분들의 환한 얼굴도 떠오르고, 두발이 고정되지 않은 3차원 공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느꼈던 그 자유로움도 생각납니다.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아내를 더욱 자주 바라보면서, 눈빛과 손짓으로 나누었던 의사소통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물속에 가라앉아있는 미군 폭격기 주변에서 이런저런 물고기들을 구경하다가, 공기가 별로 없다고 하면 빨리 올라가게 될 것 같아서 공기량 체크할 때마다 조금씩 더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결국 안전 정지할 때 강사님의 예비 호흡기를 물었고, 뭍에 올라와서 영어로 혼났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교육과 다이빙을 마치고, 어차피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안전규정도 있고 해서 인근 리조트에서 며칠 더 머물다가 귀국을 했습니다. 첫 오픈워터를 마치신 분들은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의미 없이 미뤄오고, 막연하게 동경하던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무어라도 '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죠. 일단 '해보겠다'라고 말을 해놓고, 기억해 두면, '언젠가는 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보면 엄청나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아내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오픈워터는, 첫 다이빙은 어떤 기억이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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