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부, 두 번째 다이빙

오픈워터 이후 첫 번째 다이빙 여행

by jim

필리핀, 세부.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다음 시차도 별로 없고, 시외버스 타고 가듯이 몇 시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여행지입니다. 공항이 세부 본섬에 있지 않고, 휴양지와 리조트가 집중된 막탄 섬에 있기 때문에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대부분 숙소까지 10~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이동에서 낭비되는 시간이 없는 곳이죠. 게다가 세부 퍼시픽, 우리나라 저가항공 등 저렴한 항공권을 구하기도 쉬운 곳입니다. 물론 2021년 지금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머나먼 곳이 되었지만요.


2011년, 사이판에서 오픈워터를 마치고 처음으로 떠난 '다이빙을 위한 첫 여행지'는 바로 세부였습니다. 세부를 선택한 몇 가지 손쉬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손쉬운 이유란, '복잡한 고민'의 반대말이지요. 가격이 저렴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샵이 많고, 앞서 이야기한 대로 실질적인 이동이 '가깝고', 이미 몇 번 가본 곳이라 부담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당시는 사무실 업무가 매우 극단적인 스케줄로 돌아가고 있던 차여서, 휴가도 길게 낼 수 없었는데, 하루 이틀 휴가를 내서 다이빙을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세부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이빙 후 항공기를 탑승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으니 일정, 기간은 더더욱이나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죠. 이때부터 비행기를 타고 다이빙 여행을 가게 되면 보통 마지막 일정으로 호핑투어와 같은 스노클링이나, 골프 등의 지상 일정을 자연스럽게 맞췄던 것 같습니다.



세부 바닷속 지형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녀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리조트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모래사장이 아니면 자연적으로 생긴 해수욕장은 없죠. 절벽으로 된 깊은 열대 바다이다 보니 초보자들도 다이빙 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등산을 하다 보면 고도에 따라 자라고 있는 식수가 달라지듯이, 수심에 따라 산호와 물고기들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을 보기에 참 좋고, 내 수준에 맞는 수심대로 다이빙을 하면 되거든요. 당시만 하더라도 일정한 수심 유지를 잘 못하다 보니, 무언가 대상을 하나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수심이 낮아지고, 높아지고 했었는데, 수중에서 가이드를 해주던 필리핀 마스터가 열쇠로 공기탱크를 깡깡 때리면서 수심 유지하라고 주의를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Cebu Sea World Dive, Philippines


당시에는 오픈워터 밖에 없었기 때문에 18m 이상의 수심에는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천장이 막혀있는 동굴이나 난파선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요. 저희 부부 말고 같은 일정으로 동행하신 남자분이 한 분 더 계셨는데, 다이빙 경험도 많으시고 어드밴스드 이상의 레이팅도 있으셨는데, 저희가 자격이 안되어서 더 좋은 곳을 못 가게 되신 것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다이빙 여행이 그래서 나중에 어드밴스드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필리핀에서의 다이빙은 참 편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다이빙하신 분들이 '동남아 열대 바다'에서 배워온 다이버들을 무시하나 싶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몇 차례 다이빙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 지금은 모르겠지만 - 2010년대 초반의 필리핀에서는 장비를 준비해주고, 채워주고, 오리발까지 가만히 앉아있으면 신겨줄 정도였으니 사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이판에서 재시험까지 쳐가면서 그렇게 열심히 배웠던 것들이 여기서는 써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가격도 착했습니다. 얼추 하루 100불을 기준으로 숙식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몇 년 뒤 하와이나 미국 쪽에서 했던 다이빙에서는 새벽부터 다이빙 샵으로 운전해서 이동한 다음, 장비를 직접 준비하고, 바나나랑 쿠키 몇 조각 말고는 주는 것도 없으면서, 팁까지 주고 와야 되는 다이빙 투어가 훨씬 더 비쌌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필리핀 물가가 저렴하다 보니, 저녁에 택시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몇천 원짜리 마사지도 받고, 식사도 하고 들어오는 전반적인 일정이 다 부담이 없었죠. 스시나 우니 같은 것들도 우리나라보다 저렴하다 보니 몇 번씩 가고는 했던 '논끼 Nonki'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아직도 잘 있나 모르겠네요.


Nonki, Cebu


당시는 12월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차디찬 겨울 한복판이었는데, 반팔만 입고 걸어 다니고, 물속에 뛰어드는 기분은 더할 나위가 없었죠. 적당히 놀기 좋은 20도 후반의 날씨였습니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콧속이 다 헐어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코피를 흘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던 것일까요, 아니면 바닷물이 주는 치유의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요. 하루의 몇 시간을 남들과 대화하지 않고, 눈빛만 보면서 조용히 내 내면의 집중하는 며칠을 보내다 보니 신기하게도 몇 달째 바르던 약을 쓰지 않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https://twitter.com/rolfgroeneveld/status/444521499261943808


세상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없다고 느껴질 때, 스쿠바 다이빙은 그럴 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수리 위로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내가 내 호흡을 조절할 수 있고, 발에 땅이 닿지 않는 3차원 공간에서 내가 내 자세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 말 한마디 할 수 없더라도 필요한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이빙을 마치고 나면 바로 항공기에 탑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 이틀이 남게 됩니다. 당시에는 물질에 푹 빠져있을 때여서 바로 또 아일랜드 호핑투어를 떠났습니다. 보통 패키지여행을 와서 가이드를 통해 투어를 신청하면 더 비싼 가격을 내고 더 많은 사람과 일정을 돌아야 하는데, 다이빙 샵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투어를 신청하면 배는 작을지 모르지만,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프라이빗하게 일정을 돌 수 있죠. 당시에도 선장님, 도와주는 친구 한 명, 그리고 저희 부부 둘 이렇게 배 타고 나가서 필리핀 바다에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Islands hopping tour, Cebu.


세부는 이 이후에도 지나치면서 들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같은 곳을 같은 사람들과 간다고 하더라도 절대 같지 않죠. 세월이 흐르면 환경도 바뀌어 있고, 제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진 만큼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니까요. 게다가 다이빙이라는 것은 항상 같은 곳에 들어가더라도 같은 물고기를 만날 수도 없죠. 코로나19가 끝나고 언젠가 다시 가보게 된다면 그때의 세부는 어떨지 기대해봅니다.


여러분들이 아련하게 기억하는 초보시절 다이빙은 언제, 어디였나요?

keyword
이전 01화사이판, 첫 다이빙, 오픈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