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밴스드 오픈워터 스쿠버 다이빙, Advanced Open water
사이판에서 오픈워터 자격을 취득했을 때, 당시 사장님께서는 '한국사람들은 너무 자격에 집착한다'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적지 않은 한국 다이빙 샵에서, 스스로 다이빙 장비를 챙겨서 바닷속에 뛰어들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인 오픈워터를 따고 바로 연달아 어드밴스드 까지 가르치는 패키지가 많았었는데, 사장님께서는 '그렇게 몰아서 배워도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니, 자격증에 집착하지 말고 앞으로 그냥 재미있는 다이빙을 많이 하길 바란다'라고 마지막 이야기를 해 주셨었죠.
그리고 두 번째 다이빙 여행은 세부였습니다. 아직 가본 물속보다 못 가본 물속이 많았고, 만나본 물고기보다 못 만나본 물고기가 많았기에 오픈워터 만으로도 아쉬울 것이 없었죠. 사실 일 년에 한두 번 휴가 쪼개서 물속에 들어가는 다이버이기 때문에 손을 쓰지 않으면 자세 유지도 제대로 못했던 기억납니다. 그렇지만 세부 다이빙 여행에서 일정에 같이 참여하신 한 분이 (괜찮다고는 하셨지만) 아직 오픈워터 밖에 안 되는 저희 때문에 원하는 포인트를 못 가게 된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일단 수심이나 동굴, 야간 다이빙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어드밴스드는 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또 흐르고, 휴가를 낼 수 있을 시기에 맞춰 이번에는 보라카이를 알아보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보라카이는 물가도 저렴하고 다양한 프로모션 상품이 많았습니다. 긴 해변을 가진 작은 섬이었기 때문에 필리핀 치고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고, 대부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죠. 다이빙 샵에서 며칠 묵으면서 어드밴스드 코스를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관련 있는 다이빙 샵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부에서 이용했던 다이빙 샵과 같은 상호를 가진 씨월드 다이빙 샵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다이빙을 해보면 다이빙 샵에서 운영하는 숙소를 경험하는 것도 은근한 재미입니다. 물론 호텔만큼 쾌적하지는 않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일정을 나가기도 좋고, 다이빙에서 돌아와서 또는 중간에 잠깐 낮잠 등의 휴식을 취하기도 좋습니다. 다이빙 샵 숙소를 쓰게 되면 식사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다이빙 강사, 마스터 등 스태프들이나 다른 다이버들과 같이 다이빙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죠. 오래전 일이지만 룸 컨디션도 깔끔하니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해변을 바로 바라보고 있는 건물이어서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는 경치도 좋았고, 무엇보다 해변을 따라 형성된 다른 상권을 도보로 이용하기에도 좋았죠. 상대적으로 리조트나 호텔들은 상권에서 따로 떨어져 있어서, 오히려 이동수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어드밴스드 코스는 여러 가지 다이빙 코스 중에 딥 다이빙과 항법 두 가지 필수과정과 세 가지 선택과정을 이수하면 주어지는 자격입니다. 저희는 다양한 다이빙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야간 다이빙과 조류 다이빙, 그리고 수중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서 수중 포토그래프 세 가지 선택과정을 선택했습니다. 선택과정은 해당 활동에 대한 조금 더 이론적인 부분을 가르쳐주고 체계적인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것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자격 레이팅 하나하나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예전 오픈워터 시절보다 깊이 들어가기 때문이 이와 관련된 이론과 안전 수칙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압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수중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상승하는 과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안전 절차도 중요해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수중 항법은 오픈워터 시에 잠시 실습을 했었는데, 당시 아내가 고생을 했었습니다. 멀쩡한 이정표와 참조물이 있는 지상에서도 내비게이션이나 네이버/카카오 지도가 없으면 길을 못 찾는 아내가, 수중에서 나침반을 보고 원하는 위치를 찾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죠. 물속에서 말로 길을 가르쳐줄 수도 없었고요. 그렇지만 그녀는 몇 번의 고배 끝에 해냈습니다. 울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번 시야가 좋지 않을 때, 한동안 돌아오지 않아 잠시 걱정스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보라카이는 작은 섬입니다. 작은 방카 보트를 타고 조금만 나가도 포인트가 많이 있죠. 다이빙 샵이 비치에 바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비치 다이빙도 할 수 있습니다. 세부에서 탔던 방카 보트는 이 동네에서 타는 배에 비하면 아주 큰 배일 겁니다. 거기서는 배 위에서 간식거리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보라카이의 방카 보트는 그냥 사람만 옮겨주는 모터보트 정도였고, 포인트까지 이동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전 다이빙 마치고 다시 샵에 돌아와서 오후 다이빙 전까지 낮잠도 즐길 수 있으니까요.
보라카이의 다이빙을 검색하면 '야팍'이라는 포인트가 많이 나옵니다. 수심이 깊은 포인트였죠. 포인트에 접근해서 목표 수심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조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조류 다이빙, 물속에서 처음으로 만나보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치 3차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아니면 우주영화에나 나오는 웜홀을 통과하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요. 핀을 휘젓지 않아도 몸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아주 편안했습니다.
야간 다이빙 강습 과정은 비치 다이빙으로 진행했습니다. 깊은 먼바다는 아니었지만, 처음 들어가 보는 한 밤 중 물속은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물속에서 랜턴이 작동한 다는 것도 신기했고, 태양의 빛이 없는 물속에서 위아래의 구분이 사라지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생물체들이 활동하고, 불빛에 반짝이는 오징어는 마치 우주 생물체 같아 보였습니다. 물속에서뿐만 아니라 다이빙을 바치고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의 그때 순간도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안전정지를 마치고 위로 위로 고개를 들고 올라와서 처음으로 저를 반겼던 것은 별빛이었습니다. 건물들의 인공적인 불빛에서 조금 떨어진 보라카이 바다 위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쏟아질 것처럼 별과 달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내려서 바다에서 바라본 해변도 식당과 술집, 가판대들이 밝히고 있는 또 다른 별빛이 쏟아졌습니다. 이 별빛 쇼를 볼 수 있는 건 야간 다이빙을 한 그 사람들뿐이겠죠.
아내와 야간 다이빙 이야기를 가끔 하곤 합니다. 이후에도 다른 곳에서 여러 번의 야간 다이빙을 했지만, 클럽과 라운지가 즐비한 번화한 해변에서의 야간 다이빙은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저는 화려한 불빛으로 기억하는 보라카이의 야간 다이빙을 아내는 '음악'으로 기억하고 있더군요. 물속에서 호흡 공기방울 소리만 듣고 있다가 물 위로 올라와서 자그마한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빠르고 강하게 들리던 클럽의 비트 소리, 쿵쾅대던 음악소리가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보라카이에서의 다이빙 자체는 참 즐겁고, 적당했고, 편리했습니다. 섬이 작다 보니 모든 것이 가깝고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원하는 것들은 바로바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매일의 석양이 참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단, 저희는 인천-칼리보 공항 직항 편을 이용했는데, 좁디좁은 봉고차에 몸과 짐을 욱여넣고, 섬으로 들어가기 위한 항구로 몇 시간을 이동해서 또 배를 갈아타고, 내려서 또 작은 차로 갈아타고... 새벽에 출발해서 이동하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막막하더군요. 휴가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갈 생각보다, 당장 또 저 봉고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가야 하는 것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다시 보라카이를 들린다면 조금 더 여유 있는 일정으로, 좀 더 오래 있어보고 싶습니다.
근 10년 전에도 보라카이의 산호는 많이 상해있었다고 강사님께 들었습니다. 나중에 꼭 한번 다시 가봐야 하는 곳인데, 그때는 더 나아져 있을지, 더 상해 있을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