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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 다이빙, 거북이 천국

1달러 모히또의 추억

by jim

필리핀은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따뜻한 태평양 열대 바다에 떠 있는 수천 개의 섬이라니, 아무리 가보아도 다이빙 포인트가 끝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이전에 가본 필리핀 다이빙 여행은 세부와 보라카이가 전부였는데, 보라카이는 워낙 이동이 어려웠던 탓에 선뜻 다시 방문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세부는 다이빙 여행 이전부터 몇 번 종종 들렸던 곳이어서 그다지 끌리지 않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치안문제나 이런저런 뉴스들을 접하곤 하면 또 새로운 섬에 문득 가고자 이것저것 알아보는 게 좀 귀찮기도 했습니다.



지난번 하와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거북이를 만났던 아내가 '거북이를 다시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물론 다이빙에서 만난 수중 생물이라는 게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보라카이 다이빙 샵에서 '거북이 많이 보고 싶으면 나중에 보홀 한번 가보라'고 이야기해주었던 분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마침 아내의 추천으로 다이빙에 입문한 아내 친구도 휴가를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2+1 총 세 명이서 보홀에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은 세부에서 배를 한번 타고 다른 섬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보라카이의 그 길만큼 험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공항이 있는 막탄섬에서 세부 본섬으로 육로로 이동을 해야 하고, 세부항에서 배를 한번 맞춰 탄 후에 , 다시 배에서 내려서 차량으로 다이빙 샵까지 이동해야는 번거로운 여정이긴 했지만, 좁디좁은 차에서 수시간 쪼그리고 있었던 보라카이에 비해서는 짧고도 쾌적한 여정이었습니다. 이 여행이 벌써 수년 전이고, 당시에 보홀 직항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생겼나 모르겠네요.

보홀4.JPG Bohol, Philippines


보홀에서는 2일간 다이빙을 즐겼습니다. 하루는 보홀에서 오슬롭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서 고래상어 투어를 했고, 동남아 다이빙 여행에서 늘 그렇듯이 마지막 날에는 아일랜드 호핑투어를 별도로 예약해서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초콜릿 언덕이니 뭐니 하는 다른 육상 여행지도 많았었는데, 사실 덥고 습한 동남아에서 바다를 벗어나서 땀 흘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그렇게 즐기지는 않기 때문에, 이 여행에서도 '낮에는 물질, 밤에는 맛있는 음식과 가벼운 한잔 때로는 마사지'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보홀5.JPG Bohol, Philippines


다이빙 포인트도 다채롭고 좋았습니다. 일조량이 풍부한 열대 바다 다이빙이다 보니 시정도 좋고, 사진도 잘 나왔습니다. 자그마한 난파선 포인트도 재미있었고, 예전에 보라카이에서 만났던 다이버의 추천대로 '길에 돌아다니는 개' 보다 '물속의 거북이'가 많게 느껴질 정도로 물에 들어갈 때마다 '굳이 찾지 않아도' 거북이를 꼭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보홀2.JPG Bohol, Philippines


다이빙을 진행했던 이틀 간은 다이빙 샵의 숙소를 이용했었는데, 샵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조그마한 스탠드 바가 있었습니다.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른 저녁시간이 딱 해피아워여서, 모히또를 1불에 팔았습니다. 물질로 노곤한 몸에 모히또 한 방울이 들어갔을 때의 그 청량함과 편안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육상 여행을 할 것이 아니라면 다이빙 샵과 리조트들이 몰려있는 자그마한 해변을 벗어날 일은 없습니다. 다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고, 마사지 샵도 예약을 하면 차로 데리러 오니까요. 여기저기 계속 택시비가 들었던 세부보다 더 한가한 느낌이면서, 보라카이 해변의 시끌벅적한 느낌은 뺀, '여유'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곳이었습니다. 자그마한 해변에 구성되어 있는 식당, 카페 등 적당한 규모의 상가들도 아기자기하니 예쁘고, 여행하기 참 좋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다시 한번 들러서 시원하고 편안한 그 느낌을 다시 만끽해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같이 여행을 갔던 아내의 친구는 당시에는 미혼이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한 탓에, 인생에 더 이상의 다이빙은 없어진 것 같더군요. 결혼이나 이성교제 조건에 '다이빙 자격증'이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취미를 누군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것도 참 슬픈 일이겠죠. 그런 면에서 인생의 버디인 아내와 함께 오래도록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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