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이빙 말고 스노클링만
대물, 큰 물고기, 큰 바다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은 아마 모두가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취향에 따라 마크로처럼 작은 세계에 집중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일단 크기로 압도하는 대형 바다 생명체들은 그 존재 만으로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자아냅니다.
큰 물고기 중에서도 단연 인기가 많은 것은 고래상어이지 않을까요.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도 이 고래상어의 인기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니 말이죠. 크기 엄청나고, 그렇다고 백상아리처럼 위험한 종류도 아니니 말입니다. 이름도 대단합니다. 무려 고래 + 상어라니 말이죠. 고래만 볼 수 있어도 감지덕지이고, 상어만 만난다고 해도 운이 좋은 것인데 고래처럼 생긴 상어, 고래만큼 큰 상어라니 말입니다.
필리핀 세부 본섬 남쪽의 작은 마을, 오슬롭에서는 예전부터 일정한 시간에 고래상어 피딩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산(?) 고래상어들이 일정 시간에 어부들이 마련해주는 식사(?)를 하기 위해 연안으로 몰려든다고 합니다. 이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것이 이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이고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준다는 것이 논란이 많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지역민들의 경제에 도움이 되고, 여행객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요. 투어 전에 자세히 설명해 주었던 각종 주의사항들, 환경 관련 지침들에 대한 교육이 더욱 잘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어디 다이빙 샵에서 만나셨던 분이 '세부 오슬롭에 가면 고래상어는 무조건 볼 수 있다'라고 이야기해주셨던 기억이 있어, 언젠가 '세부에 다시 가봐야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정을 알아보니 세부 시내에서 엄청 먼 길이더군요. 그렇게 '멀고 험한 길이구나' 생각만 하고 있던 찰나, 보홀 여행 마무리 여정을 짜는 과정에서 다이빙 샵에서 추천하는 선택관광 코스에 '오슬롭'이 있더군요.
보홀에서 배를 타고 오슬롭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세부 시내에서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거리상으로는 가깝더군요. 왔다 갔다 하루가 꼬박 걸리는 투어였는데, 어차피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해서 고민 없이 선택했습니다. 물론 바다에서 하는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이, 허름한 목선을 타고 멀리멀리 이동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기는 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오래 배를 타고 가야 했고, 저는 멀미를 별로 하지 않지만 계속적으로 꿀렁이는 뱃속에서 아내와 아내 친구는 제법 힘들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는 배에서는 괜히 사진 찍고 뭐하다가 마땅히 쉴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돌아오는 배에서는 후다닥 배에 올라서 앉을자리부터 확보했더랬죠.
오슬롭 항에 내리면 갑자기 정신없이 툭툭 기사들이 손목을 붙잡고 자기 차에 타라고 합니다. 이게 뭐지? 다들 그냥 타네? 추가 요금 없다고 해서 지갑도 따로 안 챙기고 비상금도 별로 없는데?라고 어리둥절해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툭툭에 앉아있게 됩니다. 목적지도 묻지 않고 그냥 내달리는 툭툭은 고래상어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 내려줍니다. 아마 저희가 지불했던 투어 금액에 이 이동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신기한 것은, 잠시 그렇게 옆모습 뒷모습으로 보았던 얼굴을 어찌 또 기억하셨는지, 투어를 끝내고 오니 그 툭툭 기사가 저희 손목을 붙잡고 바로 태워서 다시 그 항구로 데려다주더군요. 동남아에서 이런 투어를 할 때면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태국 시밀란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생각나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떠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래상어 투어는 다이빙도 할 수 있고, 스노클링도 할 수 있습니다. 다이빙 샵 사장님께서 '물속에 들어가서 따로 볼 건 없고, 고래상어만 보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 스노클링을 추천한다. 고래상어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수면에 많이 붙어있어서, 물속에 들어가면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면서 아래만 봐야 하고 사진 찍기도 어렵다'라고 하신 부분도 있고, 장비 없이 그냥 수영만 하고 싶기도 해서 스노클링 투어로 신청했습니다.
처음 만난 고래상어는 정말 진기한 광경이었습니다. 물속에 보이는 모습은 굴절로 인해서 크기가 왜곡되어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그 크기와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하기사 지구 상에 육지보다 넓은 것이 바다인데 얼마나 다양한 생명체들이 있을까요. 자연의 위대함과 거대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이빙을 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더라도 환경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바다로 흘러와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죠.
투어 시간은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물놀이가 다 그렇듯이 하루 종일 하고 있을 만한 것도 아니어서 적당히 잘 짜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들 물질을 해서 그런지,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세상모르고 꿈나라에 빠졌습니다.
다이빙도 좋지만 그 동네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정 조율 없이 편하게 바다수영을 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 하와이에서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아름다운 해변을 구석구석 누볐었죠.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을 대표하는 여행상품은 어쩌면 아일랜드 호핑투어일지도 모릅니다. 보통 국내에서 여행사를 통해 여행하면 조금 큰 배에 여러 팀을 묶어서 줄줄이 몰려다니고, 내 일정대로 다니기도 어려운 데다가 금액도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현지에서 직접 알아봐서 예약하거나, 다이빙 샵을 통해 알아보면 배는 조금 작지만 딱 저희 일행에 맞는 일정대로 다닐 수 있는 오붓한 맞춤형 투어가 가능합니다. 심지어 가격이 더 싸기도 하고요.
그렇게 마지막 날 일정을 채운 호핑투어에서, 말 그대로 '길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보다 많은 거북이'들과 수영을 즐겼습니다. 이틀 간의 다이빙, 하루의 오슬롭 고래상어, 마지막 날 호핑투어까지 짧지만 아주 알찬 여행이었습니다. 언젠가 보홀에 다시 오게 된다면 몇 주 정도 아주 천천히 여유 있는 여행을 해보고 싶네요. 글을 적으며 옛 생각을 떠올려보니 갑자기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 말고, 저는 보홀 한잔 하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