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강물 Dec 14. 2023

15.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은 당신에게

What's up brother?

당신이 저번에 슬픔에 잠식되어 버렸다. 기분이 압도되어 버린다는 표현을 썼을 때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되어 글을 씁니다.


일단 저는 우울증이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다시 고백하려니 부끄럽습니다. 매일 열다섯 알이 넘는 약을 먹은 지가 한 십 년 정도고 지금은 열 알 정도 먹습니다. 약을 먹는 일은 귀찮지만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혹여나 약을 먹는 것을 잊어버리면 다음날에 머릿속에 새들이 가득 들어찬 듯 생각이 북적북적하고 예민해집니다.


이 오랜 병과의 이별은 이제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현상유지. 지금 이 평온한 상태를 약으로 라도 유지하는 것이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언제부터 이 병이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콕 집으라면 제가 ‘다른 사람도 이만큼 힘들 거야’라고 힘든 것을 참는 것을 그만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견디는 것을 포기하니 고통스러운 일이 일상이 되어 제 마음을 덮쳤습니다. 힘든 것은 쉬어 가야 했고, 돌아가야 했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했었는데 말이죠. 그런 생각 없이 나만 힘든 것 아니니까. 힘들다고 핑계 대며 피하지 마 라는 잔인한 말을 가장 제 편이 돼야 할 저에게 채찍질을 하며 말했습니다.


'꾀병 부리지 마, 이겨 내라고! 당장 일어나!'라고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병은 아무래도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보니 음성 양성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 저의 주치의가 말했든 ‘아무것도 속단하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내가 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문가가 판단합니다. 본인이 괜찮다 안 괜찮다를 속단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제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몸과 마음에서 끊임없이 신호가 왔지만 외면했습니다.


매일 열여섯 시간 이상 자고 깨 있는 시간에는 술을 마셨습니다. 병원에 간 것은 몇 달을 그런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심장이 아파서였습니다. 병원에 찾아가서 많은 검사를 했습니다만 심장은 이상이 없었고 중증 우울증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입원대신 받은 약봉투에는 정말 많은 양의 약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날 병원 밖으로 나오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바뀐 것은 없지만 우울증 판정을 받고 정신과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합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 만으로 제가 미친 것 같고 손가락질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들어갈 때면 누가 볼까 두리번거리고 약봉투는 검은 비닐봉지에 숨겨 나왔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신경과에 간다고 말하지 절대 정신과에 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담이 길었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인정하고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몇 주간 몸이 안 따라오고 마음이 이상해서 일을 쉬었다 했죠. 몇 주 더 쉬어도 됩니다. 긴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스퍼트만 해서는 완주할 수 없습니다. 페이스에 맞춰서 조금은 느려 보이게 가는 것이 사실 가장 빠르게 가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차라리 몇 주 더 쉬는 것도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긴 마라톤에서 몇 주 쉬는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것 이겠죠. 항상 저는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당신을 위합니다.


강민드림.

작가의 이전글 14. 못하겠는 것을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