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을 읽고 난 후......

by 그림책미인 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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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글을 쓴다.

글을 잘 쓰든 아니든 글자를 배워야 하는 때가 오면 익혀야만 하는 것이 글쓰기다.

문자를 알게 되면 문장을 쓰고 문장을 쓰면 문단을 쓰면서 우리가 성장하는 만큼 글쓰기도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꾸준하게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나를 몇 번이나 다독인다.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이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야 한다.


그러면 꾸준히 쓰기만 하면 글일까?

대답은 아니다. 닥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그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번 읽어보고 수정해야 하는 퇴고 과정이 필요하다.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로 읽을 때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었을 때 보는 관점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뭐 어쨌든 작가라면, 작가가 되기 위해서라면 너도 나도 글쓰기를 한다. 종이에 글을 쓰기보다는 시대에 맞게 요즘은 현대 문명물인 IT제품을 잘 활용해서 쓴다. SNS 플랫폼에서조차 글쓰기 위한 환경을 마련해 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블로그에서 글을 쓰고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지금도 여러 사람이 도전하고 있으며 작가가 된 이후에는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닥치고 글쓰기 단계에 들어간다.

그러면 묻고 싶다.

조지오웰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처럼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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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 사진 및 밀랍 인형 -

조지 오웰은 글 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때문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둘째, 미학적 열정이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셋째, 역사적 충동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오웰이 말하는 글쓰기 이유를 생각하며 나는 어디에 해당될까 생각해 본다.

순전한 이기심 부분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일단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현실에 남들보다는 조금 낫다고 생각이 드는 자만심, 즉 똑똑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통났다. 또한 1인 브랜드 시대에 걸맞은 명함으로 작가라는 타이틀이 왠지 다른 사람과는 좀 달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글을 쓴 목적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달래고 풀 곳이 필요해서 썼다.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거친 말도 쏟아내 보고 나만 억울하며 오로지 상대방 잘못만 있다는 생각으로 내 중심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잠시라도 속은 후련해진다. 말로 공격하는 자에게 글로 공격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런 글쓰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보다는 난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궁금해져서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입으로만 썼다면 직접 내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망막해졌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씩 글을 썼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달라진 점이 바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제시어에 대한 글을 쓸 때 내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왔다. '관찰'이라는 행위가 생각이라는 영역을 넓히게 했으며 깊이 들여다보며 그와 관련된 것을 끄집어낼 때 머리에서 뭔가가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은 생각을 했다. 또한 비슷한 단어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고 더불어 부족함을 느낀 나 스스로가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덮었던 과거는 사라지고 완독 후 몇 줄이라도 플랫폼에 기록을 남겼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나 스스로가 나를 변화시켰다. 또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가지며 흥분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며 화가 올라오기도 하는 등 반응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면 오웰이 말한 역사적 충동이나 정치적 목적에 해당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오웰만큼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세밀한 관찰력에 따라가자면 세발의 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름대로 조금씩 성장함을 느끼고 있다.





7월에 만난 조지 오웰의 에세이 << 나는 왜 쓰는가 >>를 약 500페이지가 되는 많은 분량의 책이다.

<< 동물 농장 >>이나 << 1984 >>를 아직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만났다.

쉽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에세이를 통해 많은 생각을 깊게 나누는 시간이었다.

잘 알지 못했던 역사 배경에 대해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고 그의 글에 해당하는 그림책 찾는 즐거움 또한 솔솔 했다. 매일 글 한 편씩 쓴다는 것은 매일 스마트폰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기에 도태되어 가는 내 머릿속을 열심히 돌리는 페달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것은 쉽지만 걸음걸이로 내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사실은 명제와 다름없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까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해 글쓰기를 꾸준하게 하는 것이 내가 쓰는 이유다. 오로지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산소다. 글쓰기로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도 좋겠지만 '닥치고 글쓰기'를 매일 하는 것 또한 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법이다.

'나는 왜 쓰는가?'라고 묻는다면 성장하기 위해 쓴다고 말하고 싶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라고 말한 오웰처럼 그 또한 글쓰기로 성장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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