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 에세이 _ 조지 오웰 연보 >
<< 동물농장 >>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
2023년에도 여전히 독자들이 책 읽으며 그의 글에 감탄한다.
그는 영국 작가이며 언론인이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민낯을 보며 정치적 성향이 강한 글로 그 시대에 많은 반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받는 그의 작품을 만나보려 한다.
조지 오웰 에세이 << 나는 왜 쓰는가 >>책으로 그의 글쓰기에 빠져보려 한다.
우선 오웰의 에세이를 읽기 전 그가 누구인지 '연보'를 통해 알아본다.
그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장미 가시 같다는 조지 오웰의 삶을 들여다본다.
[ 조지 오웰 연보 ]
1. 출생과 유년 시절
- 1903년
6월 25일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 출생으로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이어다. 영국 식민지인 인도 행정부의 아편국 관리인 아버지 리처드 블레어와 버마에서 자란 어머니 아이다 블레어 사이의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래위 형제들과 다섯 살 나이차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04~1911년(1~8세)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영국으로 간 오웰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자란다. 좀 외로웠지만 좋은 추억이 많은 비교적 행복한 때로 남았으며 남자 형제가 없었던 그는 누나 따라 지역의 수녀원 학교를 다닌 것으로 보인다.
2. 예비학교 세인트 시프리언스
- 1911~1916년(8~13세)
세인트 시프리언스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에릭은 기숙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에 다녀야 했고 명문 사립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불행한 시절을 보낸다.
1914년 이웃집 3남매와 친해져 함께 다니면서 책을 쓰거나 시를 쓰곤 했으며, 3남매의 맏인 그녀에게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에릭은 시를 써서 두 번 지역신문에 실리고 명문 사립 웰링턴과 이튼의 장학생으로 선발된다.
3. 사립학교 이튼
- 1917~1921년(14~18세)
예비학교 시절과는 달리 이튼에서 그는 자유롭게 지낸다. 학업성적은 입학 때와는 달랐고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외가 친척이 있는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했고, 대학보다는 동양에 가보고겠다는 낭만적인 마음을 품고 이튼을 졸업한다.
4. 버마 시절
- 1922~1927년(19~24세)
대학 대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한다. 그가 선택한 곳은 영국 식민지인 인도의 관할이며,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버마였다. 5년 동안 식민지 경찰 간부 생활을 하며 제국의 식민 통치와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신에 대한 환멸을 맛보는 산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은 그의 작가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되어 소설 <<버마 시절>>(1934), 에세이 <교수형>(1931)과 <코끼리를 쏘다>(1936)등을 낳게 된다.
5. 밑바닥 생활, 습작, 그리고 입문
- 1927~1929년(24~26세)
1928년 1월 1일부로 경찰직을 그만둔다. "압제의 일원"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에게 "실패만이 유일한 미덕" 같아 보였던 당시의 심경은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 중에서 자서전의 일부라 봐도 좋을 8장과 9장에 잘 그려져 있다. 밑바닥으로 내려가 피억압자의 입장이 될 필요가 있었던 그는 런던으로 가 빈민가에서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다 이 경험은 그의 첫 문학 에세이 <스파이크>(1931)와 그의 첫 책인 수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 후반부의 바탕이 된다. 그는 1928년부터 1929년까지 호텔, 레스토랑 접시닦이 노릇을 하고, 폐렴으로 입원하기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고 파리와 런던의 매체에 실리기도 했다. 그에겐 의미 있는 습작이 되었다.
- 1930~1935년(27~32세)
영국으로 돌아온 에릭은 부랑자나 노동자 들과 어울리고, 교사 노릇을 하기도 한다. 1933년 1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출간되며, 이때부터 조지 오웰이란 필명을 쓰게 된다. 1934년 10월엔 첫 소설 <<버마 시절>>이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이때 오웰은 런던에 있는 '북러버스 코너'라는 헌책방의 파트타임 전원이 되어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서점 일을 보고, 저녁에는 사교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된다. 1935년 3월엔 교사 시절의 체험을 살려 쓴 두 번째 소설 <<목사의 딸>>을 출간하고, <뉴 잉글리시 위클리>지에 서평과 논설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한다.
6. 1936년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1936년(33세)
오웰은 1월 말에 서점 일을 접고 3월 말까지 두 달 동안 위건, 맨체스터, 셰필드 등 북부 탄광지대 일대를 다니며 하층민들의 열악한 삶을 조사한다. 6월에는 서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심리학 대학원 생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하고, 며칠 뒤엔 <코끼리를 쏘다>를 기고한다. 7월 스페인내전이 발발하자, 스페인 전장으로 달려간다. 1936년 33세 된 오웰이 보다 정치적인 작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니 특별한 해였다.
7. 스페인내전과 <<카탈로니아 찬가>>
- 1937년(34세)
3월에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대중판 및 '레프트 북클럽'의 '이달의 책' 배포용으로 함께 나와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 단, 출판사 대표이자 북클럽 편집 위원인 빅터 골란츠는 책의 2부의 내용이 회원들의 반감을 살까 두려워 저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서문을 달아놓는다. 당시 스페인 공화파를 돕던 세력들 사이엔 알력이 있었는데, 오웰이 속한 통일노동자당 민병대와 독립노동자당 분견대는 스탈린을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탄압을 받는다. 7월 초에 월링턴 시골집으로 돌아온 그는 곧 스페인내전의 체험을 그린 <<카탈로니아 찬가>>집필에 돌입하는데, 그의 책 두 권을 내었던 빅터 골란츠는 소련에 대한 비판이 못마땅해 출판 제안을 거절한다. 이에 프레데릭 워버그 출판사와 계약한 이 저작은 원고가 이듬해 1월에 완성된다.
8. 요양과 2차 대전, 그리고 <<동물농장>>
- 1938~1939년(35~36세)
35세 되던 1938년 3월, 오웰은 폐결핵 증상을 보여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4월에는 <<카탈로니아 찬가>>가 발간되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오웰은 병이 다시 도져 요양원 신세를 지는데 당분간 글을 쓰지 말고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지내라는 의사의 조언으로 9월에 아내와 함께 프랑스령 모로코로 떠난다. 소설<<숨 쉬러 나가다>>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1939년 3월 말, 완성된 원고를 들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4월에 월링턴 시골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로부터 1년 동안 글을 쓰지 않을 때면 주로 텃밭과 꽃을 가꾸고, 염소와 닭을 기르며 생활하게 된다. 6월에 <<숨 쉬러 나가다>>가 발간된다. 같은 해 아버지가 82세 일기로 숨을 거둔다.
- 1939~1945년(36~42세)
1939년 9월에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오웰은 한동안 좌절과 실의를 맛본다. 전쟁 초기에 그는 비현실적인 평화주의와 당 노선에 대해 강요에 불만을 품고 독립 노동당을 탈당한다. 1940년 3월엔 헨리 밀러의 소설 <<북회귀선>>을 논한 에세이 <고래 뱃속에서>를 포함한 세 편의 에세이가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1941년 8월에 오웰은 BBC에 입사하여 동양총국의 인도 전담 프로듀서가 되어 교양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다. 1943년 어머니가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 11월,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민방위대 일을 그만두고, BBC도 사직하며 <트리뷴>지의 문예 부문 편집장이 된다. 같은 달 <<동물농장>> 집필에 착수한다. 1944년 2월엔 <<동물농장>>을 탈고하고 아이가 없던 오웰 부부는 생후 한 달이 안 된 남아를 입양한다. 1945년 2월, 오웰은 <트리뷴> 지이 문예 부문 편집장 직을 그만두고 <옵서버>지의 전쟁 특파원이 되어 파리로 가게 된다. 3월 말에 건강이 좋지 않던 아내가 숨지고 4월에 다시 파리로 가 취재를 마치고 5월에 귀국한다. 6월과 7월엔 영국 총선 보도를 하고 8월엔 일 년 반 동안 출판사를 못 만나 출간이 지연되던 <<동물농장>>이 드디어 빛을 본다.
9. 쥬라 섬과 <<1984>>
-1946년 (43세)
마흔셋, 1946년 오웰에게는 작가로서 특별한 해를 보냈다. <<동물농장>>이 전후의 분위기를 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어 오웰은 명사가 된다. 이 책이 8월에 '미국 이 달의 책 클럽'의 도서로 선정되어 50만 부가 팔려나가면서 오웰은 작가 생활 20년 만에 최초로 경제적 걱정으로부터 벗어난다. 같은 해 <<1984>> 집필에 착수하며 130여 편의 글을 쓰고 이런저런 정치 활동에도 참여한다.
- 1947~1949년(44~46세)
1947년 5월부터 건강이 악화되자 잡지에 기고하는 글을 크게 줄이고, 그사이 예비학교 시절의 아픈 추억을 강렬하게 그려낸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를 쓴다. <<1984>> 초고를 완성하며, 연말엔 폐결핵 진단으로 결국 입원하게 된다. 1948년 3월 <작가오 리바이어던> 외에 몇 편의 에세이를 쓴다. 12월에 <<1984>> 완성된 원고를 보내고 그사이 에세이 <간디에 대한 소견>을 발표하기도 한 그는 1949년 1월에 다시 입원한다. 이후 6월에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간된 <<1984>>는 나오자마자 평단과 대중의 갈채를 받고, '미국 이달의 책 클럽'의 선정 도서가 된다.
10. 마지막 나날과 타계
-1949~1950년(46~47세)
1949년 9월에 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오웰은 런던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진다. 입원 직후 그는 <호라이즌>지 편집자 소니아 브라우넬과 결혼한다. 10월에 병실에서 결혼식을 치러지고 이후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스위스 요양원으로 떠나기 며칠 전 1950년 1월 21일, 작가 조지 오웰은 47세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오웰은 유언대로 자신이 숨을 거둔 지역의 성공회 교회 묘지에 묻히는데 묘비엔 "에릭 아서 블레어 여기 잠들다. 1903년 6월 25일 생 1950년 1월 21 일몰"이라고만 새겨져 있다. 그가 죽은 첫 아내 아일린의 묘에 심었던 장미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장미가 핀다.
조지 오웰은 순수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사회적 문제는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경찰 근무까지 사회적 환경은 그를 사회적 소설을 쓰게끔 만들었다.
조지 오웰은 힘든 순간에도 글쓰기를 크게 미루지 않고 계속 쓴다. 건강 악화로 잠시 중단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그 기간이 오래가지 않았다. 글쓰기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매일 글쓰기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결과적으로 조지는 쓰고 또 썼기에 우리가 아직까지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는지도 모르겠다.
밑바닥부터 생활한 조지 오웰이기에 피억압자들이 겪었던 일들을 독자에게 잘 전달했다. 만약 조지가 편안한 길만 걸었다면 지금의 그의 작품이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에 비해 너무 짧은 삶을 살았다는 느낌과 무엇보다 건강 악화로 글쓰기를 할 수 없었다니 아쉬움이 컸다.
자녀가 없어 입양한 아들 또한 끝까지 함께 했는데 마지막에 조지 오웰이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거 같은데 다시 재혼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웠다. 조지와 결혼한 편집자 소니아 브라우넬의 속마음이 사뭇 궁금했다.
Why,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며 글을 쓴 조지 오웰.
그의 순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으로 쓴 글을 << 나는 왜 쓰는가 >> 에세이를 통해 알아보려 한다.
조지 오엘 에세이 < 나는 왜 쓰는가 >는 약 500페이지가 되는 분량이 꽤 많은 책이다.
#밤호수 님이 운영하는 독서모임으로 합류하면서 조지 오웰 에세이에 빠져본다.
스페인내전과 1,2차 세계대전까지 겪었던 조지 오웰이 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민낯을 마주하며 오웰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글을 써 내려갔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책을 읽으면서 꼭 명심하며 읽어야 할 부분이 있다.
1. 지엽적인 '부분/정보'에 매달리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2. 글을 전체적으로 읽고 '주제와 작가의 의도'에 집중한다.
3. 탄탄한 구조, 단단한 문장을 살핀다.
4. 다양한 에세이(정치적·사회적·문학적)를 경험한다.
5. 어려운 글일수록 멈추지 않는다. 어려운 글에서는 키워드를 찾는다.
6.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인지를 알아간다.
조지 오웰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았으니 이제 그의 독특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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