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적으로 일하는 그 vs 좋아서 일하는 그녀
결혼하기 전에는 일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내가 싫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직장을 검색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면 하루에 몇 번이고 때려치우고 싶지만 감정을 억누를 때가 많다.
그 역시 그러했다.
결혼하기 전 그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 당당하게 상사에게 말했다.
성질도 내보고 때려치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말을 했다.
그런 그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가 하는 일로 가족이 먹고 살아가니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일을 보아도 참고 넘어가야 할 때가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만둘까 생각하며 다른 일을 알아보았지만 지금만큼 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어릴 적 천재라는 소리 들을 정도로 또래보다 똑똑했다. 주변인들은 그가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할 거라 예상했다. 소위 화이트 칼라 직업으로 이름을 날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연기가 하고팠던 그였지만 엄마의 심한 반대로 꿈을 펼치지도 못했다. 그게 마음 한 구석이 한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방송에 등장하는 배우를 보면 자기 나름대로 평가했다. '내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TV를 보다 그녀에게 물었다.
"나 지금이라도 연기해도 괜찮아?"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해봐. 대신 일하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그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가 원하는 걸 하기엔 스크래치가 너무 컸다.
당장 아이들 학비가 걱정됐다. 그는 그녀가 부러웠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비록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일 때문에 큰 스트레스는 없는 듯했다. 자기 일을 즐기면서 하는 모습에 부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래서 가끔은 심통을 부렸다. 일로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하거나 줌으로 해야 하는 일을 못하게 했다.
결혼 전 그녀는 번번한 직장 생활을 못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본격적인 일자리로 못 박으면서 그녀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녀가 한 공부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고, 집 안 일 때문에 시작한 일이라 애정이 없었다. 일 년 정도 아르바이트 하면서 이쪽으로 공부를 다시 하고 도전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빠의 부재로 가정형편이 기울었고, 엄마는 우울증에 불면증에 100명 중 한 명 걸릴까 말까 한 특이한 구안와사까지 와서 여유가 없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을 때까지 그 일을 계속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우울증이 왔다.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뭔가를 하고 싶었다.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모른 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배웠다.
완벽하게 해내는 일은 없었다. 하다가 몰라 스트레스도 받았고 그와 끊임없는 전쟁을 참아야 했다.
밑바닥에서부터 해야 했기에 자원봉사로 경력을 쌓아야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마당에 돈을 쓰고 다녀서 그에게 자존심 상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입을 악 물고 버텼다. 적게라도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수많은 노력 끝에 드디어 그녀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됐다. 특수 고용직, 프리랜스로 일했지만 얽매이지 않은 시간이 좋았다. 그녀는 일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았다. 누구의 아내가 아닌,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떳떳하게 사회 생활 하는 게 마냥 행복했다.
그의 심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돈 벌어주는 기계지? 넌, 도대체 얼마를 벌기에 그렇게 일에 매달리니?"
평소에는 그녀를 응원해 주는 것처럼 대하더니 술 한 잔 들어가면 본색을 드러냈다.
회사원들이 그녀가 일하는 돈이 궁금했는지 자꾸만 그를 찔렀다. 그런 날은 집 안에 한바탕 소통이 일어났다.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녀는 속상했다. 그보다 많이 벌었다면 그가 그렇게 그녀를 얕잡아 볼지 의문스러웠다. 그녀는 일이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일이 많았지만 어떤 달은 아예 일이 없는 날도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소소하게 필요한 물건들은 그녀 돈에서 해결했고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교육비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자 그는 짜증을 내면서 그녀에게 일을 때려치우라고 고함질렀다. 그녀는 자기 일을 사랑했지만 그가 그럴 때마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진로를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전문가들은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지, 내가 잘하는 일을 해야 할지 물으면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게 된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도록 노력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