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거리두기
생각은 하나의 심리적 사건이지만 우리가 실제 마주하는 건 그보다 더 복잡합니다.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관찰하다 보면 재미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편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기도 하지만, 또 때때로는 생각, 감정, 신체감각이 통합되어 하나의 꾸러미로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벼운 생각들이 떠오를 땐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따 밥 뭐 먹지”, “오늘 피곤하네” 이런 생각들은 알아차린 후 그대로 흘러가도록 놓아주기 쉽습니다. 나뭇잎은 강을 따라 저 아래로, 구름은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박스는 컨테이너벨트를 타고 저 편으로, 쉽게 지나갑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마주했을 때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내가 다 망친 거야.”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면 곧바로 아주 강렬한 감정이 찾아옵니다. 죄책감, 후회, 미련, 분노, 슬픔, 자괴감 등. 강력한 신체 감각이 동반될 때도 있습니다. 두통이 찾아오고,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가빠옵니다. 특정한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도 느껴집니다. “다 그만둘까?”, “퇴사하고 싶어.” 훈련을 하고 있는 순간이 아니었다면 이 충동은 실제 어떤 행동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특히 강렬한 감정을 마주했을 때 생각은 감정, 감각과 함께 하나의 꾸러미처럼 떠오릅니다. 부정적인 경험을 할 때에도, 긍정적인 경험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생각을 생각으로 바라보기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생각은 감정, 감각과 합쳐져 아주 또렷한 실제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생각하는 나는 착각이다’는 명제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생각과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집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나’ 자신이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되면 생각과 거리를 두는 일은 아득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꾸러미’를 각각의 개별 요소로 해체하여 바라보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은 다음 두 가지 단계를 연습하여 함양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기(awareness)와 분리하기(isolation). 알아차리기는 미음속에 어떤 부정적인 사건 또는 긍정적인 사건이 떠오를 때 이를 인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알아차리기는 앞선 명제에서 설명했던 생각의 강, 생각의 하늘, 생각의 공장 연습을 통해 훈련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공간감을 마련하여 생각과 거리를 두면 생각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고, 떠내려오는 생각에 정신없이 따라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리하기(Isolation)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앞으로 강렬한 심리적 경험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면 꾸러미를 상황, 생각, 감정, 감각, 행동(또는 행동하고자 하는 충동)으로 분리시켜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머릿속에서 하는 것보다 실제 적어보며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눈에 보이는 곳에 적어보는 것 자체가 거리두기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입니다. 휴대폰의 메모장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각각의 요소를 적을 때에는 최대한 자세히 적어보시길 바랍니다. 마치 스스로에 대한 관찰자가 된 것처럼 지금 그 꾸러미 속에는 어떤 상황, 생각, 감정, 감각, 행동이 뒤섞여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잘 관찰해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저의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상황: ‘생각은 꾸러미로 떠오른다’는 여섯 번째 명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음
생각: 왜 이렇게 추상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거지? 조금 더 좋은 표현은 없을까? 읽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감정: 답답함, 불안함, 초조함
감각: 머리가 아픔, 가슴이 답답함
행동/충동: 글 쓰는 것을 그만하고 그냥 침대에 눕고 싶었음(하지만 그러진 않았음)
가벼운 스트레스, 압박감,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혼자서도 이 과정을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우울, 불안, 또는 제법 큰 압박감, 혼란을 겪고 있다면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래와 같은 식입니다.
“‘읽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말씀주셨는데, 이해하지 못하면 어떨 것 같나요? 어떤 점을 걱정하고 계세요?”
“제 글이 형편없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별 관심을 주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무엇을 뜻하길래 그렇게 나쁜 걸까요?”
“제가 좋은 글을 쓰는 데에 실패했다는 걸 뜻하겠죠. 시간도 날리고, 에너지도 날리고요.”
만일 이와 같은 구체화가 필요하다면 심리전문가 또는 정신건강서비스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각각의 요소를 분리하여 최대한 구체화하는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꾸러미를 각각의 요소로 해체하여 잘 관찰하면 각 요소들을 그저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기 더 쉽습니다. 두 번째로 특히 구체화된 생각을 포착하여 분리해 내면 우리가 향후 그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그 작업들은 추후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자, 이제 우리에게는 꾸준히 연습해야 할 두 가지 훈련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이 연습은 생각의 강, 생각의 하늘, 생각의 공장에서 진행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의 꾸러미를 만날 때 이를 각각의 요소로 해체하여 최대한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연습만 꾸준히 잘해도 디스턴싱을 제법 잘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명제들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자, 그러면 이제 그 다음 명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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