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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Jul 16. 2024

8. 생각은 편향적이다

생각과 거리두기

우리는 생각 자체를 의심해보기 위해 그 내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관계입니다.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 내용을 검토해 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토록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칫하면 생각의 내용을 바라보는 작업이 생각과의 거리를 더 가깝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겉으로는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아무런 임상적인 효과가 없이 진행되는 심리치료는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생각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어떻게든 그 내용을 바꾸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생각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집니다. 치료를 받는 사람은 무언가 하나씩 다루고 있는 것 같으니 나름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몇 년씩을 심리치료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과정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곱씹으며 제어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임상적으로 검증해 보면 우울, 불안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장 치료를 받으며 털어놓고 조언을 받으니 무언가 개선되는 느낌이 듭니다. 결국 의존만 깊어질 뿐입니다. 심리치료를 부정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의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내용을 다루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내용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변화입니다. 이 말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앞서 생각은 부정확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생각을 의심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생각은 편향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정적인 쪽으로 편향적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부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있는 게 아닙니다. 부정적인 경향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다만, 그 생각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부정적인 생각들에 강하게 휘둘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유연하게 다른 관점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생각의 부정적인 면에만 중시하게 되는 생각함정을 ‘부정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생각이 부정적인 편향을 지니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아이의 큰 웃음소리는 우리의 주의를 강하게 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같은 크기의 소리일지라도 강한 소음, 비명 등은 우리의 주의를 더 쉽게 끕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원시시대로 가볼까요? 두 원시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 원시인은 아주 낙천적입니다. 위험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만사형통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주변 환경에 기민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반면 두 번째 원시인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소리가 들리면 금방 미래를 예측하여 불안감을 느낍니다. “뭐지? 사자인가? 위험한가? 도망쳐야 하나?” 피곤하게 사는 듯 싶습니다. 자, 이제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연의 선택을 받은 쪽은 누구일까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런다고 내 마음이 나아지겠어?” 정답입니다. 살아남은 우리에게는 두 번째 원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네요.


부정 편향은 불안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불안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불안은 생산성, 추진력, 성과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한 유명한 연구에 따르면 성과는 스트레스-불안 각성 수준이 중간 정도를 유지할 때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각성 수준이 지나치게 낮거나 지나치게 높으면 성과는 감소했습니다. 불안은 삶을 추진시킵니다. 미래를 현재로 끌고와 현실로 만듭니다. 그 결과 우리는 미래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불안이 아니라 불안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입니다. 불안과의 거리감입니다. 불안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에 침식되어 균형을 잃어버리는 건 큰 문제가 됩니다. 불안이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말끔히 없애버리려고 애쓰는 건 큰 문제가 됩니다.


부정 편향 생각함정에 빠지게 되면 좀처럼 생각과 거리를 두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생각을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기도 전에 불안은 다양한 걱정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를 압도합니다. 이와 같이 좀처럼 거리를 두기 힘든 생각을 발견하다면, 그리고 그 생각의 내용이 어떠한 부정적인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연습을 해 보는 것이 도움됩니다. 우선 내가 걱정하고 있는 부정적인 사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다음으로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그리고 그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확률이 얼마인지 적아봅니다. 자, 이제 그 확률을 평가해볼 시간입니다. 우선 부정적인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확률(A)을 적어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그것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지 않을, 즉, 무력화될 가능성도 있나요? 만약 있다면 그 가능성을 적어보고 확률(B)을 적어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부정적인 사건이 벌어졌고, 그것이 무력화되지 않았을 때, 최악의 경우 외 일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 가능성들을 네 가지 나열해봅니다. 이후 각각의 가능성들(C, D, E, F)과 최악의 경우(G)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적어봅니다. 이때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은 가장 마지막에 적으시길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확률을 계산한 후 나머지 남은 확률을 채워넣는 식으로 계산하여도 좋습니다. 자, 내가 예상한 확률과 실제 계산된 확률(A*(1-B)*G)을 비교해봅니다. 이해가 어려울 테니 아래 예시를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걱정하는 부정적인 사건: 여섯 번째 명제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는다.

그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 결국 30가지 명제를 다 정리하여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미리 예상해 본 최악의 경우가 벌어질 확률: 20% 정도 되려나?

확률 계산해 보기

    > 부정적인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확률: 60% (“반반의 확률인데 이번 글은 조금 더 어려우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무력화될 가능성: 60% (“그냥 특히 어려운 확률 계산 부분만 안 읽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나도 책 읽을 때 그런 순간이 많다. 별로 치명적이진 않았다.”)

    >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과 확률

        > 여섯 번째 명제만 잘 흥하지 못하고 나머지는 그래도 나름 반응이 있음 (10%)

        > 30가지 명제 중 몇 가지는 반응이 있어서 해당 내용으로 관심을 끔 (10%)

        > 쓰는 도중에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과 개선을 함 (20%)

        > 이어지는 글들도 쉽지는 않아서 제법 고군분투함 (20%)

        > 결국 30가지 명제를 다 정리하여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함 (40%)

예상한 확률 vs. 실제 계산된 확률: 20% vs. 9.6%(60% * (100- 60%) * 40%)

결론: 예상한 것보다는 약 2배 정도 작은 확률이다.


혹시나 부정 편향의 내용 자체에 대해 균형을 조금 더 맞추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답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만약 최악의 사건이 발생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때 내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나의 역량은 무엇일까?”


역시나 위 작업이 “부정적인 확률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어”, “불안을 없애야 해” 따위를 각인시키기 위함이 아님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생각이 이토록 부정 편향적인 경향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위 예시에서 9.6%도 나름 의미있는 확률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합당한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떠올린 정도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보다 근원적인 관점에서, 생각이 이토록 편향적이라면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모두 그대로 믿고 따를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생각들에 강하게 영향 받고 삶 자체를 그 생각과의 싸움에 낭비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생각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생각은 자동적으로 튀어오를 뿐입니다. 그런 생각은 마치 레몬처럼 강한 상징적인 의미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생각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부정적인 편향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을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은 그저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입니다. 마음속에 일었다가 또 지나가는, 때론 정확하지만 대부분은 턱없이 부정확하고 편향적이며 임의적인 대상일 뿐입니다. 이 관점을 지니고 생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것에 구속되어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자유를 찾아야 할지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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