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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모든 것들

사이다


익숙한 것들에 감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코가 막힌 뒤에야 숨을 쉰다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고, 오래된 연인과 이별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 뒤에야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익숙한 것들에 가장 많이 감사할  있으면 좋으려만.


간호사인 내 친구가 일하고 있는 중환자실에 40대 여성 환자가 입원하였다. 병명은 비소세포폐암. 흔히 이야기하는 폐암이다. 흡연을 한 적도 없었다. 뚜렷한 암 가족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운이 나빴을 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오손도손 살고 있었는데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환자는 즉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구역질이 올라오고 머리카락도 빠지며 갖은 고생은 다 하였지만 환자는 가족을 생각하며 참아냈다. 하지만 결과는 다발 전이. 뭐 그리 급하였는지 암세포는 순식간에 폐를 떠나 몸 구석구석으로 옮겨가 자리잡았다. 그렇게 환자의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고, 결국 환자는 일반 병동에서 중환자실로 자리를 옮겼다.


중환자실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공 호흡을 위한 기관 내 튜브, 혈액투석기, 체외순환기, 그리고 피부를 뚫고 있는 주사관들까지. 하지만 죽음은 이제 정말 손닿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환자도 모를 리가 없었다. 환자는 마지막까지 거추장스러운 모습으로 죽기는 싫다고 하였고, 의료진은 그 뜻을 존중하여 산소를 제공하는 콧줄만 사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근무를 서고 있는 내 친구에게 환자가 말했다.

   “시원한 사이다가 먹고 싶어요...”

친구는 어리둥절하였다. 사이다라니. 말도 겨우 내뱉는 저런 몸상태에. 괜히 한 모금 마시게 하였다가 큰일이라도 발생하면 어쩐다 말인가? 몸이 쇠약해진 환자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면 폐렴이 발생할 수 있고, 폐렴은 중환자들의 중요한 사망 원인 중 하나다. 사이다 한 모금을 위해 감수해야 할 부작용의 위험은 너무도 컸다. 가뜩이나 이미 새벽이었기에 이런 일로 당직의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었다. ‘지금 그것 때문에 밤에 연락했어요?’, ‘그런 건 알아서 할 수 없어요?’,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선생님이 책임질 거예요?’ 새벽에 꿈뻑꿈뻑 졸고 있는 당직의를 깨워 연락하면 짜증 섞인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모른 채하고 지나가기에는 생사를 오가는 환자의 부탁이 너무 소소한 것이었다. 그래, 그냥 내가 욕 먹고 말자. 친구는 당직의에게 연락했다.

   “선생님, 지금 환자분이 사이다 한 모금만 먹고 싶다고 해서요...”

   “사이다요?”

   “네. 흡인 위험이 있는 거 잘 아는데, 그래도 한 모금만 먹게 해달라고 부탁하네요. 사이다 한 모금만 줘도 될까요?”

   “조심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정 그러면 조금만 드려보세요. 대신 선생님이 옆에서 잘 살펴보고요.”

다행히 당직의는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친구는 빨리 보호자인 남편에게 연락했다.

   “보호자분이시죠? 지금 환자분이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요. 혹시 사이다 하나 사오실 수 있겠어요?”

   “사이다요? 네, 네! 제가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

그도 밤을 지새우고 있었던걸까. 남편은 쌩쌩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생겨 기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사이다를 사러 나가고 얼마 뒤 환자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 불안정한 혈압, 떨어지는 산소포화도 수치.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사이다를 사러 간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고, 친구는 얼른 사이다를 작은 컵에 부은 뒤 환자에게 갔다.

   “환자분, 조금만 정신을 차려보세요. 지금 남편분이 사이다를 사오셨거든요. 혹시 조금이라도 드실 수 있겠어요?”

친구는 사이다가 든 컵을 환자의 입가로 가져갔다. 환자는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그러기엔 너무 힘이 부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사이다 냄새... 참 좋다.”

그게 환자의 마지막 말이었고, 환자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너무도 허망하게 환자가 떠난 뒤, 남편은 ‘내가 늦게 와 그거 한 모금 먹여서 보내지 못했다’며 오열했고, 내 친구는 한동안 본인이 어물쩡거려서 환자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지냈다. 흔한 그 사이다 한 모금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다 보면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 때가 많다.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다. 종일 이어지는 강의들과 일 년에도 수십 번이고 치뤄나가야 할 평가들.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이토록 고생스러운 일인 줄 몰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된 전쟁터 속에서, 이별과 울음이 가득한 이 병원 안에서, 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마주한다. 내게는 너무도 흔하고 당연한 것들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모든 것들.


괜스레 짜증이 나고 가슴이 답답한 날이면 차가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셔본다. 목구멍을 찌르며 내려가는 탄산 방울들을 느끼며, 익숙한 일상들에 낯선 소중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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