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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Jun 08. 2021

아버지는 웃으며 안녕 했으리라는 것을

안녕

언젠가 술에 잔뜩 취한 후배가 울면서 나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은 일이 있다. 오래도록 만난 연인과 이별하였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던진 모진 말들이 외려 자신의 마음에 상처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무슨 뒷북인가 싶다가도 연인 사이의 일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니 그 친구도 오죽하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보다 둥근 말로 이야기를 건넸더라면, ‘웃으며 안녕’ 했더라면 본인도 덜 힘들지 않았을까.

스스로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이토록 눈에 밟히는 것이라면, 마지못해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말할 것도 없다. 만일 상대가 아주 떠나가는 것이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그러니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마음을 추스리고 웃으며 안녕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병원에는 임종방이라는 곳이 있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보다 평화로운 공간에서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잘 돌아가실 수 있도록 병원에서 제공한 공간이다. 여러 침습적인 의료기기들이 없고, 창이 넓게 트여 전망이 좋고, 다른 병실보다 따뜻한 분위기이며, 1인실이지만 다인실과 동일한 비용을 받는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병원 입장에서는 적자다. 임종방 하나를 운영하는 비용으로 족히 침상 여섯 개 정도는 더 운영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럼에도 적자를 감수하고 임종방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병원이 나는 자랑스럽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 환자의 보호자로 보이는 분이 나를 불러세웠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 면도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법 봉사활동 경험도 많이 쌓였고, 환자분의 면도는 많이 해 보았던 나는 흔쾌히 답했다.
   "그럼요. 몇 호실이셔요? 제가 이것만 끝나고 바로 챙겨서 갈게요."
   "19호실이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19호실은 임종방이었다. 임종방에 계신 분에게 면도라니. 갑자기 부담감이 밀려왔다. 나는 우선 환자분께 알겠노라 답하고는 봉사자실로 들어가 나이가 지긋한 선배 봉사자 선생님의 옷자락을 잡았다.
   "선생님. 임종방에 계신 환자분의 보호자가 환자분 면도를 부탁하는데요?"
   "임종방에 계신 분? 지금 의식이 없으시지?"
   "네. 이미 의식은 없으시고 임종을 기다리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나는 근심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면 되지."
   "네?"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면도 잘하잖아? 잘 해드리고 와."
이게 아닌데. 선생님은 당연한 듯 답한 뒤 쭈뼛쭈뼛 있는 나를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다를 거 없어. 환자분 마지막 가시는 길 깨끗한 모습으로 잘 가실 수 있게 꼼꼼하게 잘 해드리고 와."
그렇게 나는 면도 용품들을 챙겨 임종방으로 향했다.

햇살이 따뜻하게 스며드는 임종방 안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호자는 마흔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분이었는데, 면도를 하러 온 나를 보며 예의 갖춰 인사를 건넸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들이에요. 아버지께서 이렇게 누워계신데, 그래도 조금 더 깔끔한 모습으로 가셨으면 좋겠어서 면도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최대한 깔끔히 면도를 해드리록 노력하겠다 답했다. 그렇게 면도가 시작되었는데, 막상 해 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일반 환자들이야 조금만 신경을 쓰고 반응을 봐가며 면도를 해드리면 되지만, 의식 없이 임종방에 누워있는 환자분은 달랐다. 혹 면도를 하다가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나. 마지막 모습인데 내가 망치는 건 아닐까. 나는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하여 조심스럽게 면도를 이어나갔다. 날도 제법 더웠을 뿐더러 긴장을 한 탓에 등허리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창 집중하여 면도를 하고 있는데 대뜸 보호자가 말했다.
   "아버지. 시원하시죠?"
애틋하지만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운을 뗀 보호자는 면도가 끝날 때까지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그간 살아오시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이 클래식 음악이 어릴 때는 그렇게 따분했는데 지금와서 보니 왜 이렇게 평화롭고 차분한 것인지, 더 아파지기 전에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와서 얼마나 좋았는지, 그땐 얼마나 행복했는지. 보호자는 담담하게 환자와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옆에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면도를 끝마쳤다.

면도는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상처는 나지 않았고, 덕지덕지 수염이 나있던 것이 사라지고 나니 환자분도 훨씬 더 깔끔해 보였다. 멀끔히 누워있는 모습은 이전보다 더 평온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면도를 마치고는 보호자분께 인사를 드린 후 임종방에서 빠져나왔다.

가끔 창틈으로 주황빛 햇살이 삐져나오는 날이면 그때 그 임종방의 분위기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아빠를 보는 어린 아이와 같은 눈빛, 따뜻한 말투, 애정어린 사랑, 감사한 마음, 그리고 담담한 애틋함. 내가 나간 이후 보호자와 환자가 얼마나 더 많이 교감을 하고, 얼마나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웃으며 안녕 했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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