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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달달함이다

젤리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 우리 병원의 암병동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죽음을 받아들이고, 생애말기에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아름답게 이별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대학병원은 중증 질환을 치료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임종을 지키는 호스피스 의료는 본질적으로 대학병원의 역할이 아닐 뿐더러, 환자 입장에서는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일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우리 봉사자가 만나는 환자들은 가능성이 낮은 치료에 매달리고 있거나 시도해 볼 만한 치료가 거의 없어서 방황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봉사를 하며 만난 환자들은 대부분 끝까지 죽음과 맞서 싸우고 계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도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계셨던 , 이미 전신에 암이 퍼져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임에도 끝까지 나을  있을 거라고만 말하셨던 , 심지어는 임종이 다가왔음에도 가족들이 병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 본인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계셨던 분까지. 그러한 경우 환자의 삶은 마지막 페이지가 찢겨져버린 책처럼 어딘가 찝찝하게 갑자기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번이라도 마지막 순간 어떠한 모습과 마음으로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면 우리 삶의 마지막 장은 조금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여느 때와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날이 더워지면 병상  환자들이 가장 답답해 하는   하나가 바로 머리감기다. 몸에는 이런저런 줄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가뜩이나 호흡이 힘든데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니 몸을 움직여서 머리를 감는다는  환자들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봉사자들은 그런 환자분들을 위해 간이 목욕용품을 사용하여 침상에서 환자분들의 머리를 감겨드렸다. 입원  제대로 씻지  힘들어 하던 환자분들은 머리를 감고 나면 너무 상쾌하다고 좋아하셨고,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아했던 분들도 한번 머리를 감고 나면 다음에도  감겨달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날도 머리를 감겨드릴 분이 있나 하며 병동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학생, 나도 머리 좀 감을 수 있나?”

목소리의 힘이 약하고 말소리가 느릿느릿하긴 했지만 그래도 육안으로는 제법 정정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얼른 준비해서 다시 오겠노라 말하고는 병동에서 나와 환자 리스트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찾았다.

   ‘위암, 다발 전이, 완치 치료 X, 완화 치료?’

위암 4기로 이미 전신에 암 전이가 있고, 완치 치료는 불가능하며, 삶의 질 개선을 목적으로 증상 완화 치료를 정도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소견이었다.

   ‘제법 건강해 보였는데 이제 손 쓸 수 없을 정도까지 갔구나.’

나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준비물을 챙겨 다시 할아버지에게 돌아갔다.

   “자, 할아버지. 여기 고개를 올려보실게요. 그러면 이제 물을 묻히도록 할게요.”

암 환자들은 온도에 민감할 수도 있어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겨 드리지 않는다. 나는 적당히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받아 할아버지의 머리에 부으며 말했다.

   “너무 차갑지는 않으세요?”

   “아이고, 날이 이렇게 더운데 답답해죽겠다. 더 시원하게 해줘.”

나는 차가운 물을 조금 더 섞은 뒤 다시 한 번 할아버지의 머리에 물을 부었다.

   “이제 시원하시죠?”

   “조금 더 시원하게 해줘. 시원한 물로 머리 감아야 상쾌하고 좋지. 괜찮아.”

그렇단 말이지. 나는 제법 차가운 물을 받아와서 다시 물을 부었다.

   “지금은요?”

   “아유, 좋다. 이제야 좀 머리 감는 기분이 드네.”


할아버지의 남다른 요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분들은 머리카락이  빠진다. 따라서 환자분들의 머리를 감겨드릴 때에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머리를 만져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리를 감고 나면 머리카락이  웅큼 빠져나올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환자는 위축 가능성이 많으므로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환자분이 보기 전에 치워버리는  또한 중요한 기술  하나였다.  역시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가렵거나 더 씻고 싶은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아이고, 그렇게 만져가지곤 느낌도 안 온다. 조금 더 팍팍해봐.”

나는 조금 더 손에 힘을 주며 할아버지의 머리를 마사지 했다.

   “이 정도면 시원하시죠?”

   “조금만 더 세게 해봐.”

이제 나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이 빠지진 않는다는 걸 확인한 나는 작정하고 손 끝에 힘을 준 뒤 할아버지의 머리를 마사지했다.

   “어휴, 좋다, 좋아.”

   “오랜만에 머리를 감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학생은 혹시 미용을 전공했어? 너무 시원해.”

할아버지는 머리를 감는 내내 좋다는 감탄사를 남발했고, 머리카락을 말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미용사로 몰아가며 칭찬했다.

   “아니, 정말로 미용하는  아니야? 이거는 정말 전문가의 솜씨인데.”

   “하하하.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래도 시원하시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다음에도 머리 감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할아버지의 칭찬 폭격에 으쓱해진 나는 기분 좋게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병동을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 나는 봉사활동을 위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환자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그대로 적혀있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은 조금 달랐다.

   ‘위암, 다발 전이, 완치 치료 X, 호스피스병원 전원’

더이상 치료는 시행하지 않고 고향에 있는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기로  것이.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릴까 하여 병동으로 올라가 할아버지의 자리로 갔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어, 학생! 오늘도 나왔네. 그래, 잘 왔어. 오늘 머리 좀 감을 수 있나?”

   “아, 네?”

   “머리 감는 거 말이야. 오늘도 한번 시원하게 감고 싶어서 그래.”

나는 지난 번의 머리 감기가 제법 마음에 드셨나 생각하고는 다시 할아버지의 머리를 감겨드렸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감으며 내게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지난 세월동안 어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남에게 큰 상처주지 않고 부지런히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것. 좋은 부인을 만나 몸이 아파도 가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잘 헤쳐나갔다는 것. 아내에게도 하고 싶은 말들 많이 했고, 그나마 아직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도 연락 한 번씩 했다는 것. 아들놈이 외국에 나가있어서 들어오기로 했는데 그래도 아들 얼굴이나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는 것. 할아버지는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마지막 순간들을 나에게 찬찬히 들려주었다.


그렇게 봉사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던 중, 병동 앞을 지나는 순간에 할아버지의 부인분께서 나를 불렀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할아버지의 자리로 갔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지렁이 모양의 젤리 봉투가 들려있었다.

   “이거 받아.”

병원의 모든 자원봉사자들은 환자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도록 되어있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 이후 봉사자들은 그런 부분에 더욱 신경을 쓰곤 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할아버지께 말했다.

   “아, 할아버지.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병원에서 환자분들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말라고 해서요...”

할아버지는 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낸 뒤 다시 젤리를 건네며 말했다.

   “받아. 머리 잘 감겨줘서 그래. 고마워.”

나보다 족히 50년은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한 손에 젤리를 멋쩍게 들고 계속 받으라 권하는데 도무지 거절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젤리를 받아들고 할아버지께 감사하다, 내려가셔도 즐겁게 잘 지내시라 인사드리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할아버지가 병원을 떠나신   2 ,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득 할아버지께 받았던 젤리가 생각났다. 무언가  깊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여 미처 먹지 못하고 책장 위에 올려두었던 젤리.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나는 젤리 봉지를 뜯고 가장  지렁이  마리를 집어  안에 넣었다.  안으로는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퍼지고, 이빨 위로는 말랑말랑한 감촉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젤리를 하나씩 하나씩 먹을 때마다 차갑고 세게 머리를 감겨달라고 떼쓰는 모습, 덤덤하게 옛일을 돌아보던 모습, 아내와 속깊은 이야기를 나눴다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달달하고 말랑한 젤리는 항상 즐겁고 유하게 살라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죽음을 항상 어둡고 두려운 것으로만 생각한다. 죽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흐뭇해 하는 것은 왠지 섬찟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은 그 과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공유하였냐에 따라 죽어가는 이와 살아남은 이들 모두에게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렁이 젤리로 대표되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달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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