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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Jul 11. 2021

한없이 늘어진 시간 속에서 들려오는 포근한 목소리들

시간


주관적인 느낌은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가령 몸이 찌뿌둥하여 병원에 가 수액 주사를 맞고 나면 기분이 조금 상쾌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상쾌한 기분과 수액 주사가 정말로 건강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교하게 설계된 연구를 진행해 보면 실제 세상은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나는 근대 문명의 시작이 주관적인 느낌과 객관적인 실재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믿는다.


주관적인 느낌에 대한 믿음이 완벽하게 깨져버린 사건이 하나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인류는 오랜 기간 시간 절대적인 것으로 인지해왔다. 쉽게 말하자면 시간은 언제나 그자리에서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시간 또한 다른 속도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절대적 시간'에 대한 개념을 보란듯이 뒤집어 엎었다. 이쯤되면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만 신뢰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보았다고 말하는 귀신은 정말 죽은 이의 영혼이 이승에서 떠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망막부터 뇌의 측두엽 및 후두엽까지 이어지는 시신경 경로에 잠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정확한 기전을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환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이야기들을 놀랍도록 알아맞추는 점쟁이는 정말 신통한 능력으로 나의 과거를 꿰뚫어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두루뭉술한 질문들로부터 시작하여 기민한 감각으로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재빨리 나의 배경을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과 관련하여서는 더 흥미로운 접근도 있다. 시간은 과연 물리적으로만 상대적인 것일까, 아니면 인식론적으로도 상대적인 것일까? 즉 뇌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물리적인 현상을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인지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을 느끼는 뇌'라는 측면에서 시간은 궁극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올리버 색스는 『의식의 강』에서 시간의 인지를 '주어진 시간에 포착하는 사건의 수'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들 나이가 듦에 따라 시간이 더 빨리 흐르고 한 해가 달음질치듯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들이 많아 강한 인상이 남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수록 1년이 인생에서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최소한 칠십 줄에 들어선 나의 경우에는 시간이 예전보다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실험을 해보면 다른 노인들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 젊은 사람들은 3분이라는 시간을 속으로 정확히 헤아리는 데 반해, 노인들은 천천히 헤아리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노인들에게 눈을 꼭 감고 3분이 지난 후에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3분 30초 내지 4분쯤 되어 손을 든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시간 경과에 대한 실존적·심리적 느낌이 나이가 듦에 따라 빨라지는 현상'과 일맥상통하는지는 분명치 않다."1

즉 나이가 들면 단위 시간당 포착하는 새로운 사건의 수가 적기 때문에 같은 한 시간이라도 더 길게 느끼는 것이고, 전체 인생을 바라보았을 때는 같은 일 년이 지나도 새로이 경험한 사건의 수가 적기 때문에 별것하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달음질치듯 지나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죽음이란 실존의 소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영면인 것 같기도 하다. 두뇌 활동이 조금씩 줄어듦에 따라 생각의 속도는 점차 늘어지고 단위시간당 파악하는 사건의 수가 줄어들며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죽음이라는 그곳에 다가갈수록 생각의 속도는 더더욱 늘어지게 되고, 결국 죽음에 수렴하고 있지만 죽음에는 이르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더이상은 새로울 것도 없이 그저 늘어진 시간 속에서 한없이 표류하는 영면의 시간.


사람이 죽는 과정에서 가장 늦게까지 살아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돌아가실 때에는 울부짖으며 소리지르지말고,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며 함께 있음을 알려드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는 그러한 목소리를 들으며 돌아가시는 이는 포근한 영면 속에서 잠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없이 늘어진 시간 속에서 들려오는 포근한 목소리들. 그 목소리들이야말로 종교도 없고 과학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내가, 죽음이라고 하는 미지의 영역에서 호스피스를 이야기하며 그것이 진정으로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믿는 이유이다.


1.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알마 출판사(2018), p.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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