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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한평생 사랑해온 이를 잃은 고통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

속마음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의과대학 학생인 내가 들어가도 여간 불편한 곳이 아니다. 곳곳에서 울려대는 알람들,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의료진들, 그리고 환자의 몸에 붙어 있는 수많은 선들. 이런 곳에서 하루라도 밤을 세웠다가는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이 이렇다보니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섬망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섬망이란 질환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 혹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인지기능과 의식이 저하되는 상태를 뜻하는데, 섬망을 경험하는 환자들은 흔히 무언가 보인다고 하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섬망은 그 자체로 재원 기간을 늘리고 사망률을 높이는 영향이 있으므로 의료진들은 섬망이 오면 약을 투여하여 섬망이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한 할머니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중환자실에 격리되었다. 의료진은 할머니의 의식이 또렷하고 대화가 가능한 상태라 크게 위급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꺼이꺼이 울며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섬망이 왔구나. 다급해진 의료진은 황급히 할머니에게 카세핀*을 투여하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소리를 치며 울었고, 결국 의료진은 페리돌*과 아티반**을 투여하여 할머니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할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방문하였던 의료진에게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전화를 좀 쓰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중환자실에서는 전화를 사용할 수가 없어 의료진이 할머니께 안 된다고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요지는 이러하였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먼저 코로나19 양성 판정이나서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것. 밀접접촉자인 할머니도 양성 판정이 나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입원하기 하루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할머니는 제발 아들에게 전화 한 통만 하여 할아버지 장례는 치루었는지 물어봐달라고 하였다.


뒤늦게 상황이 파악된 의료진은 보호자인 아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하지만 아들 또한 밀접접촉자로 격리를 하고 있어 미처 장례는 아직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아들은 일단 할머니에겐 이를 비밀로 해달라고 하였다. 의료진은 돌아가 할머니에게 장례는 잘 치루었노라, 좋은 곳 가셨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말씀드렸고, 할머지는 그제야 조금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아직 의료진이 아닌 나조차 환자를 대할 때 지나치게 증상과 병명에 집착할 때가 많다. 특히 정신과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환자의 크고 작은 심정 변화 모두에 꼬리표를 달며 의학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병은 고치되 사람은 놓치기 쉽상이다. 어디까지가 의학적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이런 저런 고통들을 안고 살아가는 동일한 인간으로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영역인지 파악하는 것은 의사의 예민한 감수성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날 밤, 할머니에게 필요했던 건 마음을 억누르는 약들이 아니라, 한평생 사랑해온 이를 잃은 고통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 한 번이었을지도 모른다.




*  카세핀(Cacepin, quetiapine)과 페리돌(Peridol, haloperidol)은 항정신병제로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등에 주로 사용되지만 섬망 환자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 아티반(Ativan, lorazepam)은 불안장애에 주로 사용되는 항불안제로 불안장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신체 질환과 동반된 다양한 불안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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