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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Sep 23. 2021

환자와 여성은 두 번 만났다

인연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리워하는데도 못 만나게 되는 경우야 제법 흔한 일이지만,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사는 경우는 그처럼 애석한 일이 있겠는가. 나는 그러한 일을 경험한 적도, 건너 들은 적도 없었던지라 그러한 상황은 내게 영화 속 이야기만 같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들의 삶도 영화처럼 애석한 일들로 가득하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병동을 둘러보던 중 보호자로 보이는 한 여성분께서 환자분의 자세를 바꾸는 것을 도와달라 말씀하셨다. 나는 흔쾌히 알겠다 답하고는 환자분의 침상으로 갔다. 환자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분이었는데 새까만 얼굴과 누런 눈동자가 특징적이었다. 한 눈에 봐도 간암이었다. 복수가 찬 배는 동산처럼 불러있었다. 환자분은 자세를 조금 고쳐 앉고 싶었으나 본인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 말했다. 나는 환자분께서 편한 자세로 있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며 말을 건냈다.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고생 많으십니다.”

   “괜찮아요.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요...”

환자가 보호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보호자분께서는 가족분이셔요? 아니면 아내분?”

순간 아주 짧지만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환자는 곧이어 답했다.

   “아... 부인이에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말실수했다는 것을 느낀 나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라 인사를 드리고는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다지 특별한 말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무엇을 잘못한 걸까. 고심하던 나는 봉사를 마치고 봉사자 선생님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물었다.

   “혹시 21병실 3번 배드에 있는 환자분이요. 보호자분이랑 무슨 관계인가요?”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제법 오랜 시간 연애를 하고 결혼하였다. 하지만 결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시간이 갈수록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둘 사이의 관계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틈은 점 커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얼마있지 않아 둘은 이혼하고 말았다. 그래도 짧은 결혼 생활이었기에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나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둘은 각자 재혼을 했고 그렇게 남은 생을 평범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가정을 이뤄 무탈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재혼 후에도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내와는 거의 별거를 하다시피 지내왔고 자녀들과도 별 교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덜컥 암에 걸린 것이었다. 암은 이미 온몸에 퍼져있었고 남은 생은 길지 않았다. 그렇게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호스피스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물음에 대뜸 첫 번째 부인이라 답한 것이었다.


작은 의견 차이들이 모여 결국 이혼에 이르렀지만 환자는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람을  그리워했고, 그러한 그리움은 그가 새로운 가정을 이룬 후에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었던 터라 일생을 못 잊으면서 그저 아니 만나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호스피스팀은 난처했다. 전 부인이 보고 싶다니. 둘은 수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사이였다. 그 부인이라는 사람은 이미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텐데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이며, 환자의 가족들에게는 어찌 설명할 것인지. 호스피스팀은 조심스럽게 환자의 첫 번째 부인에게 연락하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연락을 받은 그녀는 선뜻 환자를 만나러왔고 이후 침상을 지키며 환자를 간호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환자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환자의 옆을 지켰다.


인연이라는 게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매번 과학이니 근거니 하며 젠체하는 나지만 가끔 보면 정말 어떤 관계들은 끈질긴 연줄로 얽매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 필연적인 인연을 받아들이고 맺어진 관계에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게 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환자와 여성은 두 번 만났다. 두 번째는 그리라도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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