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보
우리 엄마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는 ‘곰보 아가씨’라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곰보는 전염병이나 기타 다른 피부병을 앓은 후 얼굴에 흉터가 남은 상태를 말한다. 흔히 소보로빵을 곰보빵이라고도 부르는데, 소보로빵의 울퉁불퉁한 표면처럼 피부가 흉터로 얼룩덜룩한 상태를 곰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껏해야 20~30대로 보이는 젊은 곰보 아가씨가 어찌하여 그런 피부를 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곰보 아가씨는 본인의 추한 피부를 숨기려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녔다는 것과, 어른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듯 “쯧쯧”하며 혀를 찼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너무 순수해서 잔인한 어린 아이들이 그녀를 쫓아다니며 “곰보 아가씨다”라며 놀리고 다녔던 것, 이것이 엄마가 곰보 아가씨에 대해 아는 모든 정보였다.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엄마가 등교하던 이른 아침이었다.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학교로 향하던 중, 엄마의 눈에 곰보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골목길에서 무언가 불편한 듯 쭈뼛쭈뼛 어물쩡거리는 모습에 엄마는 약간 경계를 하며 얼른 지나가려고 하였는데, 그 순간 곰보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
“얘, 잠시만.”
놀란 엄마는 살짝 뒷걸음질치며 답했다.
“네?”
“저기 약국 가서 이 약 좀 사줄 수 있니? 내가 지금은 살 수가 없어서...”
곰보 아가씨 손에는 이미 한 다발의 약 봉투가 들려 있었다. 어린 나이의 엄마였지만 무언가 모르게 찝찝한 느낌과 곰보 아가씨의 처량한 목소리에 엄마는 본능적으로 좋지 못한 일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제가 지금 등교를 해야 해서요... 다음에...”
엄마는 그렇게 답을 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엄마는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이후 곰보 아가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곰보 아가씨는 동네에서 보이지 않았고, 한동안 동네 사람들은 곰보 아가씨가 다른 동네로 떠나버렸다더라, 곰보 총각을 만나 시집을 갔다더라, 이른 새벽 강물에 몸을 휙 던져버렸다더라 하면서 그녀에 대한 말들을 옮겼다고 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에게 곰보 아가씨는 그저 안타깝지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을 뿐, 시간이 지나 점차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아마 곰보 아가씨는 죽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이렇게 결혼도 하지 못하고 평생 놀림 받으면서 살 바에는 내 그냥 여기서 삶을 끝내리라. 엄마가 골목길에서 곰보 아가씨를 마주한 날 곰보 아가씨는 이리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죽기 위해서는 치사량 이상의 약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약국에서 약을 사 모았지만 죽기에는 아직 모자란 양이었을 테고 같은 약을 한꺼번에 많이 사다간 삶을 마감한다는 의심을 받아 일을 그르칠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곰보 아가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 부탁하자 생각했고, 그렇게 엄마를 만났을 것이다.
멋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마음은 오죽하였을까. 골목에서 쭈뼛거리며 어린 아이의 눈치를 보고, 미안한 마음에 강하게 요구하지도 못 하고, 거절을 당하였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에 다시 한번 용기내어 말 한 마디 던지지 못한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나라는 성형 강국이다. 미용을 위한 성형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강남의 어느 역에 내려 빌딩을 둘러보면 성형외과 간판으로 도배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형 수술을 너무 많이 받아 얼굴이 부자연스러운 사람들도 종종 찾을 수 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미용을 위해 성형 수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그저 기술이 좋은 사업가 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미용을 위한 성형 수술도 삶의 질 측면에서는 의학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다. 문제는 지나치게 과하게 혹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지 성형 수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아름다운 내면이 외적인 조건들을 괘념치 않도록 한다면 더할나위 없다. 하지만 외적인 조건들이 나의 자존감과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굳이 성형 수술을 마다할 이유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쟤는 어디를 했고, 쟤는 어디를 했고”하며 서로를 힐난한다. ‘본판’이 뭐 그리 중요한가. 고리타분한 순혈주의에 집착하지 말자. 그저 다른 조건 없이 예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수술 한 번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꿰매어 예쁜 마음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또한 축복할 일이다. 어찌 되었든 당당하고 예쁜 마음으로 사는 게 중요한 인생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