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있다.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읽을 생각은 하지 않은 책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읽게 된 것은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였는데, 막상 읽고 나니 '닥터 후'를 재미있게 보았던 나의 취향에 상당히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닥터 후처럼 처음부터 유쾌함을 상정하고 만든 작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늘 오후에는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6만 원어치를 팔았다. 새책이었다면 훨씬 비싼 돈을 주었겠지만, 그렇다고 읽지 않을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비효율적이기는 하다. 책은 항상 계속해서 두고두고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하게 된다. 그렇지만 막상 두 번 이상은 읽어야 계속 읽을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읽고 나서 필요가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 팔아 버리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헌책방에서도 안 받아주면) 폐지로 버리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문학 작품은 두고두고 읽게 될 것이고 경제 같은 실생활에 대한 책들은 유행이 지나거나 내가 영양분만 다 빼먹고 나면 버리게 된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지만 인간사가 다 그렇듯 그렇게 칼로 책상에 금을 긋듯이 확실하게 나누어지는 일은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책에 대해서도 항상 예외가 튀어나오고는 했다. 기독교에 대한 책도 유행을 따라가서 영양분만 빼먹고 나면 곧 그런 관점은 너무 일회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폐지로 버리는 책이 있고(기독교 책은 중고로 팔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또는 두고두고 읽는 책도 있다. 이건 너무나 주관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가지고 있게 되는 것도 우연인 경우가 많다. 소설 같은 것들도 가끔 심리적으로 읽기 힘든 작품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팔아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강 작가의 작품은 그래도 오랫동안 팔지 않고 놔두고 있다. 읽기 힘든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지나가면 뭔가 한줄기 남는 게 있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읽기 힘든 건 아니지만 지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서 뭔가가 남는 '것 같아서' 놔두는 책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도 있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읽을 때마다 혼자 삼십 년은 살아낸 것 같아서 뿌듯한 느낌이 든다.
경제에 대한 책이 대표적으로 한 번 읽고 만다고 생각했던 분야이다. 그래서 그런 책들은 전자책으로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떤 분야든 때로는 심사숙고해서 읽어야 하는 책도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리고 전자책은 생각보다 너무 산만하다. 무엇보다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책이 너무나 많아서 메뉴상으로는 '책꽂이' 혹은 '서재'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여기저기 펼쳐 놓은 것과 같아 지금 읽는 책에 조금만 싫증이 나도 곧바로 다른 책을 찾게 된다. 그래서 작년에 2주에 걸쳐 출장을 갔을 때도, 당시에 추세추종에 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있었는데 아예 그 책 한 권을 사서 가지고 갔다. 그 책밖에 읽을 게 없게 되면 한 책만 2주 동안 계속해서 읽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한 권을 세 번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고 색인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돌아와서 다른 책을 마저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아무리 실시간 경제에 대한 책이라고 해도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라면 배우려는 자세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맹이를 빼먹는다는 것은 결국 뭔가를 배운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뭔가를 배우고자 할 때는 단지 한 번만 읽어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는 읽을 수 있는 것이 이 책뿐이라고 굳게 믿어야만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아이러니가 있다. 내가 성격이 좋지 않은 것인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읽는데 막상 책을 덮을 때 배울 게 없으면 기분이 어마어마하게 나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표지에 낙서를 해서 버리기도 하고(이런 경우에는 중간중간에도 쓰레기 같은 책이라고 표시를 마구 한다. 누군가 판매해서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책을 사느라 돈을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책을 구입한 사이트에 가서 리뷰를 적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진화하는 법이므로 한두 번 당하고서는 더 당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건 바로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두 가지 방향으로'만' 굳게 걸어가는 것이다. 첫 번째는 책에서 소개받은 책을 구입하는 것이다. 단, 처음 읽은 책이 내 마음에 들었을 경우에 한해서지만. 그리고 두 번째는 서점에서 충분히 읽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서 한 권을 다 읽는다는 건 아니다. 단언하건대, 그렇게 읽어서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다. 내 책이라는 인식도 없고 차분히 앉아 읽는 것도 아니고 메모나 밑줄도 불가능한 데다 한 번만 읽으면 '읽은 책' 목록에 상장처럼 제목이나 추가되고 끝이니까. 그래서 방학이나 연휴 때 서점에 책 읽으라고 자녀들 데리고 와서 앉혀 놓는 부모들도 공짜만 좋아하는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충분히 읽는다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구입하기 전에 충분히 훑어본다'는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 보기 되는 부분은 가장 좋아 보이는 부분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말이다. 직접 서점에 가서 훑어보아도 비슷한 정도로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발품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책도 삼고초려가 필요하다. 세 번 훑어보고 세 번 모두 구입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되면 구입해도 좋다. 우리나라 출판업의 부흥을 위해서는 무조건 구입하는 게 좋겠지만, 책을 만드는 데 있어 출판업의 부흥을 고려해서 만드는 출판사의 비율도 얼마 되지 않을 테니 독자만 호구가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첫 번째 훑어볼 때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기억해 두었다가 두 번째 서점에 갔을 때도 그 책을 훑어본다. 세 번째 갔을 때도 좋아 보인다면 구입해서 읽어도 되는 것이다. 그래도 결국 헌책방에 내놓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세 번이나 훑어보고 구입하는 건데, 그런 생각이 있는데도 다시 보니 구입할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건 정말 그 책이 형편없거나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훑어보다가 맞춤법이 거슬리면 절대 구입하면 안 된다. 이건 출판사를 위해서도 나쁜 일이다. 기본적인 맞춤법도 맞추지 않은 걸 작품이랍시고 표지나 그 밖의 다른 것들 때문에 돈을 쓴다면 나쁜 버릇을 키워주는 것 밖에 안 된다. 번역이 이상해서 결국 내가 원서까지 구입한 '알렉산더 해밀턴 평전'도 있지만 몇 부분(세 부분인가, 얼마 안 된다.) 말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서 책에 표시만 해서 잘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이미 다 읽고 가지고 싶어 져서 구입한 상태여서 괜찮았다. 그런데 훑어보는데도 그런 부분이 눈에 띈다면 그건 책을 성의 없이 만든 것이다. 정치 용어로 날치기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가까스로 다섯 층짜리 책꽂이 하나의 분량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오늘 헌책방에 책을 팔고 온 것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돈이 더 많아지면 더 많은 책을 꽂을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지만 그건 요원한 일이다. 건축이나 명화 같은 분야의 그림+사진책들의 인쇄 상태가 조금씩 질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사진이 더 퀄리티가 좋으면 사진을 보는 게 낫다.
글의 시작과 끝을 맞추자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다 보니 든 생각이, 닥터 후 소설 버전이 나온다면 구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닥터 후 작가들의 특성을 보아하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BBC도 그런 전적이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말이다, 그때 가서 번역의 퀄리티가 어쩌고 하더라도 닥터 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 자체로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술 취해서 쓴 것 같은 소설을 읽다가 키보드를 꺼내서 맥주 한 잔 마시며 글을 쓰니 그것도 또한 조선시대에 몸을 꽁꽁 감싸고 겨울밤 마루에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어두운 마당을 흘깃 쳐다보며 벼루에 톡톡 붓을 찍어 글을 쓰는 기분이 아닌가 싶다.